저는 잘파 텀블러 ‘스탠리(Stanley)’의 소유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생일을 맞은 에디터에게 쏟아졌던 “생일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니?”를 하나의 후보로 제안해 봅니다. 애써 내놓은 대답 중 꽤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품목이 있는데요, 바로 ‘스탠리(Stanley) 텀블러’입니다. 내 돈으로 구매하기는 애매하지만, 하나쯤은 갖고 싶던 핫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죠.
12가지의 다채로운 선택지 중 단 하나를 고르는 과정도 괴롭지만 즐거웠습니다. 제가 갖고 싶던 초록색은 품절이라 결국은 다른 색상을 골라야 했지만요. 그렇게 받아본 연보랏빛 스탠리 텀블러는 꽤 큼직했고, 반질거렸고, 영롱했습니다.
어쩌면 제 생일보다 이 텀블러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손잡이를 잡은 채로 품에 안고 있었을 뿐인데, 회사에서 “이거 완전 핫한 MZ 텀블러 아녜요?”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텀블러가 인기를 끌게 된 건 작년 틱톡에 업로드된 한 영상 때문이었는데요, 화재로 모조리 타버린 한 차량의 처참한 장면 속 견고하게 세워진 스탠리 텀블러의 멀쩡한 자태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텀블러 속 얼음도 하나 녹지 않은 상태였으니 말이죠.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10대 자녀에게 선물할 스탠리 텀블러를 구하기 위한 미국 부모들의 오픈런 행렬이 보도되었습니다. 스타벅스와 스탠리가 협업한 한정판 핑크 텀블러를 구매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심지어 한 여성은 텀블러 65개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차가 폭발해도 멀쩡한 텀블러’만큼 관심을 끄는 키워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책 [2024 문화 소비 트렌드]는 ‘이코노-럭스’라는 한 개념을 소개합니다. 경제적 합리성을 뜻하는 ‘economically’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호화스러움인 ‘luxuriously’의 합성어인데요, 어쩐지 양면적인 느낌이 물씬 드네요.
아름다운 허상일지라도 삶에 힘을 더하는 것에 기꺼이 소비하는 이 현상은 ‘잘파세대(Z+alpha)’에게서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아니, 이 양면성은 잘파세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성과 선호가 뚜렷한 잘파세대는 가격보다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가치에 부합하는 소비를 하기 때문이죠.
스탠리 텀블러를 회사에서 개시한 제가 ‘MZ 텀블러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잘파 텀블러’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코노-럭스’처럼 아름다운 허상을 좇는 것이 나쁘기만 한 걸까요? 합리적인 소비를 ‘노력하던’ 에디터는 생일 선물로 호화스러운 스탠리 텀블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변화라고 한다면, 출근 후 책상에 놓인 텀블러를 보고 만족스러워하고, 물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마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책상에서 사진 하나를 찍으려고 해도 스탠리가 나오도록 구도를 고쳐 잡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경험과 스탠리의 엄청난 검색량에 빗대어, 스탠리 텀블러는 단순히 물을 마시기 위한 제품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분별하게 유행을 좇는 건 당연히 경계하고, 지양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에디터는 잘파세대의 ‘특권’이 유행과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는 유행에 편승해도 된다는 무책임한 말은 아닙니다. 유행하는 문화 소비를 탐색하고 실제로 경험해 보며 평가하는 과정도, 이를 되짚어 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이죠. 마치 우리가 10년 전 품절 대란을 빚은 ‘허니버터칩’을 기억하며 즐거워하는 것처럼요.
이번 ‘스탠리 유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에디터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얼음이 잘 녹지도 않고 색도 예쁘지만, 가끔 관심을 끌고 유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 경험이 생각보다 즐겁다고요. 2024년을 살아가는 여러분은 잘파세대의 이코노-럭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