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의 학비는?
나에게는 미국에 와서 일하다 만난 한국인 간호사 친구, 미숙이가 있다. 미숙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해서 일하다 만난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두 딸을 키우며 지내다 첫아이가 간호대학에 입학할 때 본인도 간호대학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하여 간호사가 되었다. 미숙이는 자기가 공부를 잘해서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했는데 난 그 말을 쪼끔 의심한다. 공부를 잘했다는 것도 믿고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도 믿지만 둘의 인과관계는 살짝 의심한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응시할 때 나의 경제적 상황을 대학 당국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함께 내야 한다. 미성년자라면 부모의 경제적 상황이라 할 것이다. 이전 해의 세금보고서(한국식으로 하자면 연말 정산보고서), 모든 금융기관의 잔액을 증명하는 서류 등을 FAFSA(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s)에 내고 대학들은 FAFSA에 있는 학생 가족의 경제적 정보를 공유한다. 대학이 학생의 입학을 허가할 때에는 학생 가족이 부담 가능하도록 대학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고려하여 장학금과 대출 금액을 정해 준다. 대학에서 제시하는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은 보통 부모의 수입과 재산 상태, 가족 수에 따른 평균 생활비를 계산하여 그 가족이 지불할 수 있는 모든 걸 지불하게 한다. 한 집에 두 명의 대학생이 있을 경우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숙이의 경우 딸과 같은 시기에, 게다가 같은 대학에 갔으므로 대학 당국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성인인 미숙이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많다. 나의 두 아이들은 대학 내내 거의 All A 학생이었지만 전액 장학금은커녕 일반 장학금도 입학하는 첫 해 이후엔 없었다. '넌 왜 장학금도 못 받냐'라는 나의 질문에 지은이는 자기가 장학금을 못 받는 건 자기 탓이 아니라 내가 너무 잘 벌어서라고 투덜댔었다.
미국의 대학들은 4 단계로 등록금에 큰 차이가 있다. 가장 비용이 적은 곳은 전에 소개했던 Community College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전문대학은 지금 검색해 보니 한 학기에 강좌당 $46이고 외국인의 경우 강좌당 $466라고 나온다. 캘리포니아 이외의 지역에서 온 미국인도 외국인과 같다.
보통 한 학기에 4 과목을 수강한다면 그만큼 곱하면 되니 일 년에 캘리포니아 주민이면 $368, 외국인이면 $3728 정도가 될 것이다.
다음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인데 주립대학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UCLA 나 UC Berkeley 가 속해 있는 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들과 다른 하나는 California State University(CSU)에 속하는 대학들이다. UC 대학들이 이론적 연구 중심의 대학 교육에 중점을 둔다면 CSU대학들은 직업 및 실무 중심의 교육에 초점이 있다. UC 대학들은 CSU대학들보다 학비가 비싸다. CSU 대학의 1년 등록금은 2025-26 학년에 캘리포니아 주민이면 $8,457, 외국인은 $21,820이라고 한다. UC 대학의 1년 등록금은 2024-25 현재 $16,050 / $50,250에 달한다.
사립대학들은 대부분 UC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요구하는 등록금보다 일 년에 만불정도 더 비싸지 않을까 한다. 예로 하버드 대학의 2024-25 학년의 등록금은 $59,320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모두 구글 검색에서 얻은 기록들이다.
이리 비싼 학교들을 전액 내 돈 들여보낼 수 있는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두 아이들도 모두 학자금 융자를 받아 모자라는 금액을 보탰다.
지은이는 입학허가를 받았던 대학 중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주립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대학을 가려면 워싱턴주의 주민이 아니므로 외국인이 내는 등록금을 내야 했다. 워싱턴 주립대학은 $5,000의 장학금도 준다고 했으나 만약 그 대학을 보낸다면 일 년에 수만 달러를 더 지불해야 했는데 나는 당시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편 대학 탐방 때 본 워싱턴대학 기숙사의 열악한 환경도 마음에 걸렸다. 시애틀의 더럽고 혼란스러운 대도시 환경보다 UCSC의 조용한 도시 환경과 널찍한 기숙사도 내 마음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뜻밖에도 지은이는 워싱턴 주립대학을 포기하고 나의 권유에 순순히 따랐다. 내가 워싱턴 주립대학보다 UCSC에 진학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 단 한 번의 항의조차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물었을 때, 지은이는 지금도 워싱턴 주립대학에 못 간 것이 서운하다고 했다.
4년 후 지은이가 대학원에 갔을 때는 석박사과정 졸업 시까지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조교로 일하며 받는 임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대학원 입학 허가서(Admission Letter)에는 등록금 면제 제안과 함께 조교로 일하며 받을 수 있는 임금을 알려주는 채용제안(Job Offer)까지 함께 있었다. 결국 결과가 좋았으므로 워싱턴 주립대학을 가지 않고 UCSC를 간 게 잘한 결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차선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이룬 성공에 감사한다.
사립 미술대학을 갔던 지아는 물론 훨씬 비싼 등록금을 내야 했다. 학교도 맨해튼에 있어 생활비도 비싼 곳에서 대학을 다녔다. 미술대학 학생들은 무겁고 덩치 큰 스케치북이며 각종 장비들을 일상적으로 들고 다녀야 해서 나는 지아가 학교에서 먼 곳에서 통학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제시했던 학자금 대출을 받고, 나는 학비와 거주비를 지불했고 기타 생활비는 지아가 일해서 충당했다. 지아 아빠도 비용의 일부를 담당하여 도움을 주었다. 지아는 등록금의 20% 정도를 정부에서 주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졸업 시에는 약 $28,000의 빚을 지게 되었다. 정부에서 주는 학자금 대출은 재학 중에는 갚을 필요는 없지만 5-6%(지아와 지은이가 받았던 이자율인데 지금은 더 높을 거라 짐작한다)의 연 이자는 계속 붙는다. 지은이처럼 졸업 후 대학원을 진학할 경우에도 졸업 시까지 대출 상환의무는 연기된다. 만약 일반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 한다면 이자율도 치솟고 대출 상환 의무도 훨씬 까다로울 것이다. 지아와 지은이처럼 미성년자로 대학을 갈 경우 일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 한다면 크레디트 점수가 없어 거의 가능하지 않고 부모의 이름으로 받으라고 한다. 내가 한번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자율이 거의 크레디트카드 이자율과 맞먹어 깜짝 놀랐었다. 나는 대출을 포기하고 대신 내가 퇴직연금에 저축하던 금액을 최소화하여 지아의 학비를 마련했다. 지아의 마지막 등록금을 냈을 땐 내 저축계좌도 동나 있었지만 '이제 다 이루었다'는 느낌으로 안도했다. 경제 활동을 하던 성인이 대학을 갈 경우엔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대출이나 장학금도 더 많을 것이고 일반은행의 대출 조건도 더 나을지 모르겠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학자금 대출 감면 대상의 대부분은 정부펀드에서 나간 대출이 아니라 일반 은행에서 고율의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한 경우일 거라 짐작한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받은 학자금 대출은 받는 즉시 그대로 대학 당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 말은 그 돈을 내가 현금으로 만지진 못한다는 뜻이다. 미국 대학에서 제공하는 정부 펀드에서 나오는 대출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반 은행에서 해 주는 대출의 경우 학생의 생활비를 위한 대출도 가능하므로 학비가 싼 Community College를 졸업했지만 그동안의 생활비를 대출받아서 몇만 불의 대출금을 갖고 졸업하는 간호사들을 보았다. 의사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20만 불 정도의 학자금 대출을 안고 졸업한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의과대학의 학비는 일반대학 보다 훨씬 비싸다.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제공하는 AP (Advanced Placement) Courses 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들을 이수한 학생들은 그 과목이 대학에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라면 재수강할 필요 없이 이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많은 AP과목을 이수한 학생은 4년제 대학을 3년 반 만에 졸업할 수도 있고 학과목이 줄어든 만큼 대학 학비도 줄어든다. 지아의 경우 영어와 IB Art를 대학에서 인정받으며 마지막 학기에는 그전학기보다 약 $7000를 절약하였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재학 중,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을 초대하여 대학 학비에 관한 교육을 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부모의 재력에 따라 대학 당국은 장학금이건 대출이건 제공할 것이며, 어떻게든 아이들이 성공하도록 도울 것이니 절대 미리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배운 것 중 하나가 529 Plan이다. 529 Plan은 자녀의 대학 학비를 미리 저축, 투자하였다가 자녀가 대학에 갔을 때 찾아 쓰는 대신, 투자 이익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지 않는다. 나는 지은이 때는 투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고 529 plan을 아직 잘 몰라 이용하지 못했으나 지아의 경우에는 만불을 투자한 후 1년 후에 30%의 이익을 내고 수령하여 등록금에 사용한 적이 있다. 만약 계좌의 주인공인 자녀가 대학을 가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가족 혹은 나중에 손자 손녀까지도 계좌를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의 현명한 부모들은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529 계좌에 저축성 투자를 시작한다.
대학 학비는 물론 연말 정산 시 세금면제 대상이다. 하지만 수입의 상한선이 있고 면제되는 금액도 상한선이 있다. 나의 경우 지은이가 대학에 갔던 첫 한 두 해에는 세금 감면을 받았으나 내가 주당 32 시간 근무에서 36 시간 근무로 옮겨 수입이 늘고 두 아이가 16세 이상이 되어 자녀 감면도 받지 않게 되자 세금 부과 대상 수입이 늘어 대학 등록금은 더 이상 세금 감면 대상이 되지 않았다. 미국의 세금 시스템에서는 일을 더하여 수입이 늘면 세금은 몇 배로 늘어난다.
나의 두 아이들은 둘 다 대학 졸업과 함께 경제적으로 독립하였다. 그들이 대출받은 학자금도 그들이 알아서 잘 갚아나가고 있다. 지아의 회사에서는 직원이 대출한 학자금이 있을 경우 다달이 소액을 갚아준다. 지아는 이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일정량의 대출금을 회사가 갚도록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