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침대 사이
두 달여 만에 돌아온 집이 낯설었다. 여기저기에 말라죽은 거미며 파리가 눈에 띄었다. 열어 놓고 갔던 화장실 창문 밑에 검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어딘가 산불이 난 곳으로부터 날아왔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엔 늘 산불이 여기저기서 타고 있다. 부엌 싱크대도 낯설었다. 손잡이를 당겨야 찬물이 나오는지 밀어야 찬물이 나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틀어보면 알 것이지만 그러려면 한참을 물 낭비를 해야 한다. 여름엔 찬물 꼭지에서도 더운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날 새크라멘토의 기온은 40도가 넘었다. 한국에서 온 조카가 머뭇머뭇 내게 물었었다.
" 이모, 어떻게 하면 찬물이 나와요?"
" 음, 겨울 되면 찬 물이 나와."
여긴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최저기온이 영하 1도쯤 되는 날이 일 년에 두어 번 있을 뿐인데 그런 날엔 뉴스 앵커들이 수도관이 얼지 않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부산을 떨고 동네 꼬마들은 희끄무레 얇은 성에가 낀 잔디를 긁으며 눈이라고 좋아한다. 그러니 누가 수도관을 땅 속 깊이 설치하겠는가. 구름 한 점 없는 여름에 뜨거운 지열을 종일 받은 수도에선 더운물만 나온다. 벌써 가을이 시작된 퀘벡의 얼음장 같은 찬물을 아쉬워하며 한참을 기다려 땅기는 쪽이 찬물이었음을 새삼 배운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고 푹신한 내 침대에 들어가 눕자 비로소 집에 돌아왔음이 실감이 난다. 배고플 때까지 스무 시간은 침대에 붙어 있으리라. 나는 푹신한 침대를 좋아한다. 언니네 집 침대는 나의 취향보다 딱딱했다. 이제 한 달 후엔 한국에 간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한국에 갈 때마다 가장 힘든 게 거긴 내 침대가 없다는 거다. 엄마 집엔 새 침대를 들일만한 공간이 없다. 며칠 다녀가는 주제에 나를 위해 푹신한 침구를 마련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습도 높은 더위다. 찬바람을 무서워하는 엄마때문에 에어컨은 아주 잠깐 밖에 못킨다. 10월에도 더웠고 심지어 11월에도 더웠다. 엄마가 편안한 실내 온도는 내가 편안한 실내 온도보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아마 5도는 높은 듯하다. 아니면 멀리서 온 딸이 혹시라도 추울까 봐 평소보다 훨씬 온도를 높여 놓으시는 지도 모른다. 내가 자는 사이, 내가 추울까 봐 전기요를 켜 놓으시기 때문에 그걸 못하도록 설득하는 데엔 여러 번의 언쟁이 필요했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너무 피곤하고 온몸이 쑤셨다. 작년엔 일주일에 한 번씩 찜질방에 가서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차라리 에어비엔비에 단기 숙소를 빌릴까도 생각해 본다. 한국에 와서 엄마 집에 머물지 않는다면 엄마가 너무 슬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두 달 사이 앞 뒷마당엔 volunteer 나무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 자라고 있다. 잔디 보다 더 푸릇푸릇한 잡초들도 여기저기에 무성하다. 내가 키우지 않은 애들은 내가 집에 없다는 걸 더 잘 알아차린다. 정원 일은 다음 주말에 시작하자고 미룬다. 실내에서 할 일이 더 많다. 휴대폰 충전기만 꺼낸 트렁크는 내일 정리하기로 한다. 친구들에게 돌아왔다고 신고도 해야 하고, 수북이 쌓인 우편물도 처리해야 하고, 냉장고 필터도 바꿔야 하고, 전기 콘센트도 고쳐야 한다. 엄두가 안 나서 하루에 하나씩만 하자고 나를 달랜다.
한국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약을 챙기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 당뇨도 고혈압도 없지만 이 지구가 나를 거부하므로 매일 두세 가지 알레르기 약을 삼키고 뿌리고 흡입하며 버티기 이십여 년이다. 지구가 날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지구를 거부하는 건가? 언젠가 했던 알레르기 검사에서 내 몸은 50여 종의 풀과 나무, 개와 고양이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나왔다. 화장품이나 비누도 '자연을 담은' 혹은 'organic'이 붙어 있으면 여지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심지어 웬만한 금속에도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혹시 난 지구별 태생이 아니라 머나먼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니었을까.
한국 갈 비행기표를 예약하려면 크리스 언니랑 먼저 통화를 해야 했다. 크리스 언니가 다음에 내가 한국 갈 때 같이 가고 싶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20대에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에 온 후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한국에는 여러 형제도 있고 치매에 걸린 구순 넘은 어머니도 계시지만 한국에 안 간 지 오래라고 했다.
"한국에 한번 가려면 못 들어도 오천달러는 깨지는데 여유가 없어서...."
"무슨 오천달러요, 많이 들어도 이삼천이면 비행기표랑 각종 경비 쓰는데요, "
"아유, 무슨 이삼천이야, 오랜만에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도 없잖아, 내가 형제도 많고 조카도 많아서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도 없고..."
"네? 나는 늘 빈 손으로 가는데... 그럼 안 되나요?"
"아유, 넌 자주 가니까 빈 손으로 가도 괜찮지만, 나는 오랜만에 가는데 어떻게 빈 손으로 가"
이게 전에 했던 대화다. 암튼 언니에게는 언니의 인간관계의 기준이 있고 나의 뼌뼌스러운 기준을 언니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시도에 언니가 전화를 받았다.
"언니, 저 집에 왔어요. 회양목에 물을 얼마나 잘 주셨는지 제가 있을 때 보다 더 푸릇푸릇 쌩쌩해요, 감사합니다. "
캐나다로 떠나기 전 날 크리스 언니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회양목 담장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물을 주라는 부탁을 언니는 흔쾌히 받아주셨다. 옆 집에 부탁할까 하니 그 집의 십 대 아이들이 맘에 걸렸다. 두 달씩 집을 비운다는 걸 알면 십 대 아이들은 내 집에 와서 무엇을 할지 모른다.
"언니, 저 한국 가는 비행기표 사려고 하는데 언니 것도 살까요?"
"아니, 나 못 가. 강아지들을 맡길 데가 없네."
크리스 언니는 두 마리의 긴털 치와와를 키운다. 작년까진 세 마리였는데 작년에 한 마리가 죽었다. 언니는 죽은 강아지가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기다렸는지, 퇴근해서 집에 가자마자 안아주었더니 그 순간 눈을 감았다고 몇 번이고 그 얘기를 했다. 언니는 자기 음식보다 치와와 음식에 돈과 정성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닭가슴살을 삶아 잘게 찢어 개들 밥상을 차리신다. 예쁜 강아지들의 미용도 물론 손수 하신다. 작년에 은퇴하기 전까진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환자들 운반하는 일을 하셨다. 가끔 퇴근 후에 뭉치자고 하면 언니는 늘 한 시간 늦게 만나자 하신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강아지들 먼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숙이네 집에 부탁하자고 해 본다. 물론 언니는 안된다고 하신다. 언니는 언니 기준의 돌봄을 주어야 하고 남의 손에 맡기는 게 편치 않으신 게다. 사랑은 줄수록 커지는 습관 같다.
우리 엄마의 생일은 추석이 지난 5일 후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다들 고아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더더욱 엄마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데 뭔가가 나를 붙잡는다. 대가족의 맏며느리였던 우리 엄마는 명절을 맞으면 늘 여러 채반의 부침개를 종류별로 부쳐야 하는데 한국에 있는 아들들도, 딸도 며느리들도 모두 직장에 매여 있고 이젠 엄마 자신도 부엌일을 하실 수가 없는지라 든든한 일꾼 둘째 딸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실 게다. 추석 전에 한국에 가야 한다. 근데 난 선뜻 비행기표를 사지 못하고 있다. 은퇴하면 한국 가서 엄마랑 살겠다던 생각은 한때의 꿈에 그친 지 오래다. 엄마랑 같이 지내는 게 싫어서가 절대 아니다. 내 침대가 너무 좋은 걸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