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미국 병원 9

간호사들의 다양한 채용 형태

by 새 날

미국 간호사들은 아주 많은 자리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그런 일들을 다 해본 것도 아니고 다 잘 아는 것도 아니어서 이 글에서는 내가 이십여 년간 일했던 병원에서 직접 경험했거나 보고들은 것만 소개하겠다.

우선 채용 형태의 다양성을 소개하고 싶다. 병원에서 직접 채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간호사는 full time, part time, per diem, house pool로 나눌 수 있다. 병원에서 직접 채용하지 않고 외부 간호사 채용 기관과 계약을 맺어 사용하는 간호사에는 여행간호사(Travel nurse)와 레지스트리 (Registry) 간호사가 있다.


내가 일했던 병원의 경우, 풀타임 간호사는 주당 32시간 이상 일하는 간호사를 지칭한다. 8시간씩 일하는 부서라면 일주일에 4일 이상, 12시간씩 일하는 부서라면 3일 이상 일해야 한다. 하루 10시간, 4일 일하는 부서도 있다. 파트타임 간호사는 주당 30시간 이하로 일하는 조건으로 채용된 간호사인데 최소한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은 일해야 한다. 풀타임은 물론 파트타임 간호사도 의료보험, 연금, 휴가, 교육 등의 직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나의 동료 간호사 중에는 대학교에서 실습강사로 고용되어 실습학생들을 지도하러 오는 한편, 병원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대학교의 실습강사의 보수는 임상 간호사 보수보다 훨씬 적다.


Per Diem은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하루 단위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Per Diem 간호사는 병원에 채용된 직원이긴 하나 아무런 직원 혜택을 받지 않는 대신 시간당 급여는 일반 신규 간호사들보다 10달러 이상 높았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경력이 쌓인다고 급여가 올라가지도 않는다. 다만 단체협약으로 정한 임금 상승률은 적용된다. Per Diem간호사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 일하는 대신 간호사가 남으면 먼저 일에서 면제된다. 미국에서는 정액 월급제가 아니고, 일 한 시간만큼 시간급을 받으므로 환자가 적은 여름철에는 한 달 내내 하루도 일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간호사가 부족할 경우에는 원하는 한 많은 시간 일할 수도 있다. 내가 본 Per Diem 간호사 중에는 타 병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우리 병원에서는 Per Diem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 이상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Per Diem으로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출근하던 간호사도 있었다. 두 어린아이를 키우던 젊은 엄마는 경력의 끈을 잃지 않기 위해 per diem 자리를 지켰고, 대학원에 재학 중인 간호사도 있었다.


House pool 간호사 역시 한국에는 없는 제도인데 채용 시 어느 한 부서를 정해 놓지 않고 지역 내 여러 병동 아무 데나 간호사가 부족한 곳에서 일하는 걸 전제로 채용된 간호사를 뜻한다. 중환자실, 분만실, 심장모니터링, 일반 간호사 직종들로 구분되어 있고 시간당 1달러를 더 받았다. 이들은 매일 일 시작 2 시간 전에 그날 일할 곳을 연락받는다. 만약 간호사가 부족한 곳이 없다면 아무 데서도 일하지 못한다. 즉 하루 쉰다. 이 때는 쉬는 만큼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다. 휴가 시간이 충분하면 휴가 시간을 사용하여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


여행간호사는 여행간호사 회사에 고용된 상태이면서 병원과 회사 사이의 계약에 따라 파견된 간호사이다. 병원은 회사에 임금을 지불하고 여행간호사는 그들의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계약된 비용은 이미 지불되었으므로 병원의 환자 수가 줄어 간호사가 필요 없을 때에도 정규 직원 중에 쉬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규 직원을 쉬게 하고 여행 간호사를 일하게 하는 게 병원으로서는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대개는 1-3개월 계약인데 병원의 정규 직원 중 장기 병가 등이 발생할 경우 여행간호사를 사용한다. 내가 본 여행 간호사 중에는 원래 집은 몬타나주에 있는데 몬타나 주에서 견디기 어려운 추운 겨울 포함해서 6개월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와서 일하고 나머지 6개월은 집에 돌아가 휴가 같은 집생활을 하는 간호사 부부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6개월 일한 걸로 1년 살기 충분하다고 했다. 여행 간호사를 채용하는 회사들은 아파트도 제공하고 의료보험, 연금, 휴가 등등의 직원 혜택을 제공한다. 나의 동료 간호사 중 한 명은 우리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한편 여행간호사 회사에도 파트타임으로 취업하여 우리 병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아파트를 받지 않는 대신 그만큼 임금을 더 받는다고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여행간호사 회사들은 간호사가 부족한 지역에 간호사들을 파견하며 큰 공헌을 했다. 여행 간호사 제도는 어찌 보면 미국 전체를 놓고 간호사의 수요와 공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레지스트리 간호사는 그야말로 응급 상황에서만 사용했고 병원으로서는 가장 높은 비용이 드는 것 같다. 이들은 외부 기관의 house pool인 셈이다. 갑작스럽게 간호사가 부족할 경우 한 근무 단위로 사용한다.


이런 다양한 채용 형태는 병원의 환자 대 간호사 수를 채우면서도 환자 수가 변함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목적과 관련이 있다. 지금 검색해 보니 챗봇의 대답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2004년에 간호사대 환자의 비율을 법으로 정한 최초의 주라고 한다. 진료부서와 병원 유형에 따라 그 수는 다르다. 수술실은 1:1,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회복실은 1:2, 소아과, Step down 병동은 1:3, 심장 모니터링 병동은 1:4, 일반 병동은 1:5, 정신과는 1:6이다. 이 비율은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도 적용된다. 병원 전체 환자 수와 간호사 수를 나누어 평균값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내가 채용되었던 것도 2004년으로, 당시 캘리포니아의 병원들은 법을 지키기 위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간호사들을 채용해야 했다. 그러나 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간호사들의 투쟁을 필요로 하였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에피소드처럼 한 간호사에게 5명의 환자를 맡기는 supervisor가 있었고 이를 거부하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했다. 매 선거 때마다 캘리포니아의 병원 단체들은 이 법을 완화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하고 간호사 노동조합들은 이 법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곤 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간호사 채용은 인력을 법적 요건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다. 간호사들의 휴가를 보장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병결(sick call)에 대처하기 쉽다.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의 휴가 시간은 근무한 시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예를 들면 신규 간호사의 경우 일주일에 40 시간을 일했다면 4시간의 휴가시간(PTO, Paid Time Off)이 발생하는데 2주일이면 8시간, 4주일 일하면 16 시간의 휴가 시간이 생긴다. 휴가 비율은 근무 경력이 증가함에 따라 3단계로 증가하여 내가 퇴직할 당시 주당 40시간 일하면 5.5시간의 휴가가 생겼었다. 휴가 시간은 축적할 수 있고 연말에 400 시간 이상 축적된 휴가 시간은 돈으로 지급된다. 간호사들은 자신이 축적한 휴가 시간을 연중 자유롭게 사용하되 같은 시기에 각 근무조 당 두 명까지만 휴가를 준다. 그래야 매니저들이 근무표 작성 시 매일매일 필요한 인력을 다 채울 수 있다. 휴가는 근무 시간표 작성 시에 미리 신청하여 승인받는다.


병결은 근무시간 시작하기 두 시간 전까지 전화로 통고한다. 본인이 아플 경우 일 년에 5회까지, 가족이 아플 경우에도 일 년에 5회까지 신청할 수 있고 1회는 연속 40 시간까지로 한정되고 만약 40 시간 이상 쉬어야 한다면 의사의 진단서를 내고 병가로 변경된다. 간호사들이 병결을 통고하면 병원의 인력 관리 담당자는 해당 부서의 책임 간호사와 연락하여 환자 수를 확인하고 간호사 인력을 채워야 한다면 인력을 데려올 수 있는 다른 병동이 있으면 그쪽 병동에 연락하여 남는 간호사를 병결이 발생한 병동으로 보내도록 한다. 병원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house pool 간호사를 보낸다. House pool 간호사로 해결되지 않으면 그날 쉬고 있는 간호사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문자를 보내고 기다린다. 그래도 간호사가 부족하면 외부의 registry 간호사를 요청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charge nurse가 환자를 맡거나 현재 근무조에서 연장 근무 할 간호사가 있는지 찾는다.


병동 내에 모든 간호사가 full time이라면 결원을 내부에서 메꾸려 할 때마다 병원은 시간당 임금의 두 배를 지불해야 한다. 주당 40 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경우는 2배, 8시간이나 12 시간을 초과하나 주당 40 시간 이내라면 1.5배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파트타임이나 Per diem 간호사가 있으면 초과 수당 없이 결원을 메꿀 기회가 생갈 수 있다.


대체로 여름휴가 철에는 수술 환자 수도 적고 입원 환자 수가 줄었다. 이럴 경우 병동 간호사들 중 쉬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off를 준다. 해당 병동에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병원 전체로 확대하여 off를 원하는 사람을 쉬게 하고 환자 수가 적은 병동의 간호사가 off를 받은 간호사의 병동으로 가서 근무한다. 따라서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는 어디선가 누군가는 병결을 하고 어딘가는 환자 수가 줄어 늘 여러 병동으로 옮겨 다니며 일했다. 병동에서는 환자 수가 적을 때 가야 하는 원치 않은 외부 근무(이를 floating 간다고 했는데) 순서표를 기록하여 오늘의 차례가 누군지 찾았다. 물론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 1순위이다. 외부에서도 간호사가 필요하지 않고 간호사가 남으면 이 또한 순서를 정해 강제 off를 준다.


추수 감사절이 지나면 환자들이 폭증하기 마련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고 이동하고 접촉하는 데다가 독감철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최악이다. 크리스마스에 off를 받는 것도 치열한 경쟁 속에 이루어지고 (작년 크리스마스에 일한 사람, 경력이 오래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 병결도 급증하며, 빈자리를 채울 사람도 구할 수 없다. 내가 일하기 시작했던 2004년 크리스마스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엄격한 환자 대 간호사 수를 적용하는 법이 시작된 첫 해였다. 병원은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House pool 간호사 제도도 없었다. 환자는 몰려들고 간호사는 부족했고 결국 우리 병동의 밤 번 Supervisor는 36시간을 연속으로 일했다. Supervisor는 가장 최근의 명칭이고 그전에는 Coordinator란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는 직책인데 charge nurse의 역할을 한다. 근무 중에는 30여 명의 환자를 8명의 간호사들에게 나눠 주고 휴게 시간표를 작성하는 등 업무 분장을 하고 중환자 발생 시 도와주고 각종 사고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을 갖추고 간호사들을 관리감독한다. 한 병동에는 매니저 한 명과 supervisor 가 근무 조별로 두 명씩 있었다.


한국에서 일할 당시에는 누군가 아파서 못 나올 경우에는 대체 인력이 없으므로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쉬는 간호사 중 한 명이 불려 나와 일해야 했고 내가 못 가면 나의 동료가 쉬는 날을 반납하고 일하러 나오는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참고 출근하는 것이 미덕이고 도리였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쳐 온 지금도 그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것이 환자들과 동료들을 위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도 캘리포니아의 병원처럼 house pool 간호사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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