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로열 오크, 1976년 노틸러스가 발매되지만 쿼츠 혁명이 가장 뜨거웠던 1975년에서 1985년의 10년간 파텍 필립과 대부분의 스위스 브랜드들이 생각했던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는 방법은 얇고 작은 시계였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디자인 때문에 39 밀리의 큰 시계였다. 당시 사이즈로는 너무 커서 '점보(Jumbo)'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파텍 필립의 홉네일 칼라트라바가 32 밀리, 롤렉스의 데이트 저스트가 36밀리이던 시절이다. 로열 오크가 출시 후 베스트셀러로 확인되기 전 오데마 피게와 파텍 필립은 자신들이 보아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크기를 조금 줄이는 시도도 해 보게 된다.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들과 다른 재질이나 디자인이 출시되면 얼리어댑터가 아닌 보수적인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기는 어렵다. 더구나 32~36 밀리 정도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40밀리에 가까운 시계는 너무 커 보였던 것이다. 이태리의 시계 소비자들은 얼리어댑터에 해당하여 발매 즉시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에 관심을 보였지만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은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1965년 파텍 필립은 새로운 칼라트라바 디자인으로 홉네일(hobnail) 베젤의 칼라트라바 3520을 발표한다. 롤렉스 데이-데이트의 베젤을 연상시키는 베젤이다. 또한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 등 얇게 보이는 디자인을 사용한 첫 칼라트라바였다. 사용된 무브먼트도 인하우스 무브먼트 중 가장 얇은 무브먼트가 3 밀리의 수동 무브먼트 23-300였으므로, 프레드릭 피게의 칼리버 21을 사용하여 직경 32밀리에, 두께가 5.5 밀리의 초박형 시계였다. 얇은 시계이면서도 생활 방수 기능을 가진 스크루 백의 디자인을 선택했다. 롤렉스 등장 이후 소비자들의 요구였던 생활 방수까지는 고려한 시계였다.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는 1950년대에 이미 함께 개발한 수동 무브먼트(바쉐론 콘스탄틴 1003, 오데마 피게 2003)를 사용하여 얇고 슬림한 시계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1965년 파텍 필립의 칼라트라바 3520의 발매는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가 앞서가던 슬림한 시계에 동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텍 필립은 얇은 시계보다는 합리적인 두께(10 밀리 이내)로 롤렉스처럼 크로노미터 시계에 집중하던 브랜드였다. 그런 파텍 필립도 이제 시계의 대세는 얇고 작은 시계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오데마 피게(칼리버 2121)가 주도하고 바쉐론 콘스탄틴(칼리버 1121)과 파텍 필립(칼리버 28-255)이 참여하여 개발한 당시 가장 얇은 자동 무브먼트인 JLC 920(직경 26 밀리, 두께 2.45 밀리 - 데이트 모델 3.05 밀리)이 개발된 것이 1967년이다. 그리고 이 무브먼트를 사용하여 로열 오크, 노틸러스, 바쉐론 콘스탄틴의 222주년 모델인 '222'가 1977년에 발표되었다.
한편, 파택 필립은 홉네일의 신형 칼라트라바를 발표한 지 3년 후인 1968년에는 '골든 엘립스(Golden Ellipes)'를 발표한다. 유니섹스 모델로 출시한 시계였다. 원형 시계인 칼라트라바의 사이즈를 더 줄이면서 수학의 황금비율을 적용하여 세로 길이는 칼라트라바와 같은 32밀리이지만 가로길이를 27밀리로 줄인 시계였다.
2018년에 50 주년을 맞이한 시계이지만 파텍 필립이 목표로 한 유니섹스 중 여성용에서만 성공을 거둔 시계다. 대신에 주저하며 동참했던 노틸러스가 남성용 시계로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골든 엘립스는 결국 '작고 얇고 작은 시계'였다.
그래서 첫 시계는 당시 파텍 필립에서 제조하는 가장 슬림한 무브먼트인 23-300(수동 : 직경 23, 두께 3 밀리)를 사용했지만 이 시계에 사용하기는 조금 컸으므로 쿼츠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인 1974년에 수동 무브먼트 215(직경 21.9, 두께 2.55 밀리)를 개발하고, 1977년에는 자동 무브먼트 240(직경 27.5 밀리, 두께 2.53 밀리)을 개발하게 된다. 골든 엘립스에는 쿼츠 무브먼트도 사용되었다. 다만 파텍 필립은 같은 디자인으로 기계식 무브먼트와 쿼츠 무브먼트 양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를 모두 판매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다른 브랜드들이 포기하던 기계식 무브먼트를 새롭게 개발했다는 것은 적어도 그 후 10년 이상 기계식 시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1980년 손목시계 컴플리케이션에 도전하기 위해 Musy를 영입하고 미니츠 리피터와 대형 회중시계인 칼리버 89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텍 필립에게 엘립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계이다. 파텍 필립은 처음으로 시계 외에 다른 제품들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엘립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커프스 버튼과 키홀더는 물론 라이터까지 만들게 된다. 쿼츠 혁명이 가져올 몰락에 대한 불안감은 파텍 필립 조차도 로버트 호크와 페렝이 창조한 머스트 카르티에까지 모방하는 다양한 미래를 구상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즉 얇은 시계 전쟁은 쿼츠 혁명을 대비하던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되어 1970년대에 그 정점을 이루었던 것이고 기계식 시계는 얇은 시계 경쟁에서 쿼츠에 완전히 밀리고 말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진행되지만 당시에도 컴플리케이션을 제외하고 가장 보편적인 디자인은 얇고 작은 시계였다. 오메가도 1964년 700번대 자동 슬림 무브먼트(두께 3 밀리)를 개발하고, 론진도 1977년 서둘러 칼리버 990번대(두께 2.65밀리, 데이트 모델 2.95 밀리) 자동 무브먼트를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1980년대에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기계식 무브먼트, 쿼츠 무브먼트의 사용에 무관하게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얇고 작은 시계를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고가의 컴플리케이션보다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시계는 얇고 작은 시계였다.
데이트 저스트와 데이-데이트가 최고급 제품이었던 롤렉스도 윌즈도프가 죽은 후인 1962년에 미다스(Midas)를 발표하며 얇은 시계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롤렉스 '첼리니' 라인의 시작이다. 롤렉스를 대표하는 오이스터 퍼페츄얼과 달리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었지만 대부분 골드 시계이고 얇은 시계들이다. 미다스(Midas)는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브라슬렛 일체형으로 전체가 골드인 시계이다. 1956년에 발매되어 골드 모델로만 판매되던 롤렉스의 최상급 모델인 '데이-데이트'보다 비싼 시계였다. 얇은 시계 전쟁에 대비하는 만큼 미다스는 가장 얇은 프레드릭 피케 21의 수동 무브먼트를 사용했고, 이 보다 저렴하게 판매할 첼리니의 다른 모델들에 사용하기 위해 직경 20.8 밀리에 두께 2.55 밀리의 새로운 수동 무브먼트(칼리버 1601과 1602)도 만들게 된다.
이처럼 모든 브랜드들이 죄다 디자인도 고만고만한 얇은 시계들을 만들었는 데 어째서 롤렉스,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은 쿼츠 혁명기를 무사히 넘기고 오메가, 론진, IWC, JLC는 파산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얇고 작은 시계가 대세였는 데, 컴플리케이션 전쟁의 포화가 사라진 1990년대에 느닷없이 큰 시계가 유행하게 된 것일까?
얇은 시계 전쟁에 이어서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진행되던 과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겠다. 컴플리케이션 전쟁이 절정을 향해 달리던 상황에서 당시 LMH의 사장이던 블륌레인이 1989년 통독이 되자마자 발터 랑에를 찾아가 랑에 운트 조네를 창업하게 된 동기와 신제품 중에 투루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수동 시계들을 발표하고도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