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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May 19. 2023

7. 내가 가진 물건이 짐이 되는 순간

원룸 반포장이사 준비하기




핸드폰 달력을 열어 이삿날까지 남은 하루를 세었고 지난 하루를 지웠다. 남은 하루가 지난 하루보다 더 조금 남게 되었을 때쯤 나는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반포장이사를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이사 견적을 받으려 이사어플에 들어가 먼저 내가 옮길 수 없는 큰 가구들을 체크했다. 먼지만 가득 쌓인 채 쓰던 침대 파레트는 당근마켓 판매에 성공했고, 이제는 멀쩡한 침대 하나 가진 게 없었다. 이삿날까지 그냥 맨 바닥에 토퍼만 놓고 지냈다. 고시원 침대 사이즈라서 작은 체구인 나도 그 위에 누워 양 팔을 벌리면 손끝이 바닥에 닿았다. 그때의 차가움이 되려 시원하게 느껴져 좋기도 했다. 우리 집에 뭐가 있지.. 가늠가늠 떠올리며 체크해보니 무거운 전신거울 1개.. 투도어 중간 수납장 1개.. 이것도 꽤 무겁다. 수건걸이 1개, 원형 테이블 1개, 의자 두어 개 정도는 사실 내가 옮길 수 있는 무게지만, 그래도 가구라고 분류되는 물건이니 일단 체크했다. 누군가에게는 필수품일지도 모를 TV나 공기청정기 같은 것도 없음.. 이렇게 보니 정말 별로 가진 게 없었다. 내가 가진 물건을 이동하는데 돈이 드는 상황에 놓이니 내가 별로 가진 게 없다는 것이 어째 좋은 일이 되었다. 슬프게도 그랬다.



그러나 제대로 된 큰 가구 하나가 없었다는 것은 내가 그런 물건을 들일만큼 갖추고 살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내가 지내는 곳은 7평짜리 원룸이었고 몇십 몇백만 원짜리 가구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건 내게 사치로 느껴졌다. 그 대신 그 헛헛한 마음을 내 정도에 맞는 잔물건들로 채우고 살았다. “물건을 가진다”라기 보다 “물건을 샀다”라는 말이 알맞았을 것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다. 망원동에 가면 무조건 포롱포롱 잡화점이란 소품샵에 꼭 들렀다. 그곳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든 물건이 있었다. 영롱한 빈티지 접시들과 커피잔 세트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고양이 무늬의 종지부터 식빵 모양의 수저받침, 갖가지 모양의 화병들까지 가게에 한가득했다. 나는 가게 안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하나씩 들춰보며 귀여워했다. 작고 예쁜걸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잔물건들이 잔뜩 모여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 소품샵을 둘러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들뜨고 행복하게 했다.


소품샵의 잔물건들은 늘 깨끗하게 잘 정리된 상태로 각자의 위치에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있어야 가장 예쁜 모습이도록 태어난 것들이었다. 먼지 하나 없도록 자주 들여다봐줘야 빛이 나고 예쁜 것들이 바로 잔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집의 내가 들인 잔물건들은 그렇게 지낼리가 없었다. 잘 키우려는 마음도 없이 내가 들였기 때문에.






집들이 선물로 받은 인테리어용 향초를 모두 버렸다. 조개 모양도 있고 정사각형인데 동글동글한 모양, 암튼 향초로 많이 만드는 그런 모양인 것도 있고 빌딩모양 같은 것도 있었다. 3개를 예쁘게 나란히 잘 두었더니 인테리어소품을 몇 개 둔 것만으로 집안이 감성적으로 보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아주 예쁘고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물건들의 나이가 3년쯤 되니 더 이상 처음처럼 빛나지 않았다. 인테리어용 향초이니, 소품으로 예쁘게 잘 감상했다가 지겨워질 때쯤 잘 피워 사용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생각조차 안했다. 물건의 쓰임에는 크게 생각지 않았다. 물건을 가지기만 할 줄 알고 잘 들여다볼 줄을 몰랐다. 잘 지내고 있는지 관심을 주지 않으니 어느새 먼지만 후두둑 앉아있었고, 이미 못나진 물건에 버리는 마음을 먹는 건 내멋대로라서 아주 쉬웠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예쁜 그릇을 사는 것도 좋아했다. 동묘시장에 가서 당시 유행하던 오비라거 맥주잔 하나를 천 원 주고 얻어왔는데 한 번도 사용하질 않았다. 평소 술을 마시질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음에도, 굳이 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굳이 샀었다. “오렌지주스라도 담아먹지” 애써 그 물건을 쓸 구석을 찾았다.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는 대단한 고민이나 큰 다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놀이처럼 돈을 쓰면 나는 물건을 가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들에는 더욱 더 망설임이 없었다. 이 좁은 집에 크고 대단한 것들은 없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예쁜 것들이 가득 있다면, 이 집도 소품샵처럼 내게 늘 들뜨고 예쁜 집이었으면, 하고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주방에는 머그컵도 있고 법랑컵도 있고 주스용 유리컵도 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용 내열유리컵도 있어야 했다. 그냥 커피잔도 있어야 했고 또 커피잔은 그 받침까지 있어야 구색이 맞았다. 접시도 마찬가지. 파스타용 접시도 있고 볶음밥용 접시도 있도 밥그릇, 국그릇, 한 개만 있으면 아쉬우니 모두가 두어 개씩 정도가 있어야 했고 반찬 접시도 있어야 했고 디저트 접시도 있어야 했다(내가 가진 그릇들을 떠올리며 적다 보니 정말 이렇게 많아야 쉽긴 하다... ).



내가 이 많은 식기류들을 빠짐없이 잘 사용했을까?



절대 아니었다. 접시와 어울리는 포크가 없다던지, 생각보다 접시에 담긴 음식이 맛스럽게 보이지 않아서라던지, 국이나 반찬은 잘 먹지 않기도 해서라던지의 이유로 즐겨 사용하지 않는 그릇들이 점점 생겼다. 손이 가지 않는 물건들에는 그만큼 관심과 애정이 줄었다. 또 이것저것 가지는 것에만 욕심내서 그런가 이상하게 한데 모아보면 그다지 예뻐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 물건을 가졌다는 것에 있어서도 더이상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가장 예쁜 모습이도록 각자의 위치에 잘 맞게 놓여진 소품샵의 물건들하고는 전혀 딴판이었다. 내가 쓸데없는 욕심으로 들인 물건들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스타, 유튜브 속 새로운 물건들을 보았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예뻐보이고 더 빛나보였다. 또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잔물건들을 이사박스에 잘 포장하는 일이 남았다. 신발장 한쪽 구석에 우풍을 막으려고 잘 모아뒀을 뿐인 뽁뽁이 뭉치와 베란다에 쌓아둔 버리지 못한 택배박스들이 아이러니하게 유용한 순간이었다. 크기가 제각각이다보니 이 박스에도 담아보고 저 박스에도 담아보며 최대한 빈틈없이 담으려 했다. 조그만 접시나 화병같은 잔물건들이었는데도 박스 하나에 꽉꽉 들어차니 그 무게가 엄청났다. 손이 닿지 않는 주방 상부장 위까지 물건을 꺼내려 손을 뻗고, 바닥에 주저앉아 뽁뽁이로 잘 싸고 무거운 박스를 옮기는 작업을 계속 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꼬리뼈 안쪽 깊은 곳이 콕콕 쑤셨다.


그런데 그 고통보다 더 처참한 고통이 왔다. 아직 담아야 할 물건들이 많은데 뽁뽁이와 박스가 벌써 동이 나버렸다. 싸지도 담지도 못한 잔물건들이 며칠째 바닥에 나뒹굴었다. 물건들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그렇게나 가지려고 마음 먹었던 물건들이 이제는 예전만큼 설레지도 않는 모습으로, 내가 어떻게 가져야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는 처치곤란의 상태로 놓여져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그냥 이미 버려진 물건 같아 보였다. 내가 가진 물건이 짐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 했던 내가 이제는 하나라도 더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떠날 때가 되니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이 모두 내가 감당해야할 짐이었다. 손이 가질 않아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끄집어내니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는 물건들, 갯수를 줄이고 싶은 물건들을 추렸다. 당근마켓에 판매를 시도했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이라 그런가 구매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삿짐으로 굳이굳이 내가 가져가려면 또 뽁뽁이나 종이를 구해 돌돌 말아 싸고 크기에 맞는 박스를 찾아 담고 박스테이프를 찍 뜯어 두세번 붙이고.. 이 모든 과정에 힘이 더 들었다. 정말 무기력하게도 그냥 내다 버리는게 더 쉬웠다.


열심히 버리고서도 결국 내가 다 담지 못한 물건들은 추가 비용을 내고 이사업체에서 포장해 주기로 하였다. 말이 포장이지 그냥 어린아이 키만큼 커다란 이사용 pp박스에 내 물건들이 대중없이 쌓였다. 아마 그 박스채 내다 버려도 정말 이상하지 않은 모양으로 내 물건들이 그렇게 쌓여져 실려갔다.





이 집에 얼마나 오래 살겠어?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있었다. 7.2평짜리 원룸에 나는 에어컨도 없이 살았다. 지지난 여름에 울면서 찬물샤워한 기억은 정말 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었지 않을까 싶다. 에어컨은 설치비용도 드는데 집을 빼줄 때 제거비용까지 들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까웠다. 이 집에 들어찬 모든 물건이 그랬다. 제대로 된 물건들은 갖추지도 못한 채로, 큰 고민 없이 들인 쓸모없는 물건들만 가득했다. 분명히 더 열심히 돈을 벌고 모으고, 그걸 불려서 더 좋은 집에 살게 될 날을 꿈꿨는데도, 정말 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물건을 채웠다.



이제 이사를 간다. 더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가고 싶어서, 층간소음을 피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만료돼서 이런 것들처럼 계획된 이사로 발품 팔아 구한 집도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의 지각만을 면하며 살던 나에게 하늘에서 이사라는 동아줄을 내렸다. 웃프게도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조그맣고 귀여운 거. 정말 그렇게 지낼 5.7평짜리, 조그맣고 귀여운 원룸으로 나는 이사를 간다.




짐을 모두 비우니 예쁜 집.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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