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에서 쌍꺼풀 만들기 도전

길에서 보낸 유용한 시간들(1)

by 윤옥환

#시간 #용불용설 #교육 #대통령자격


아마 30대 초 어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고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하여보았다.

검사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안경을 사용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이대로 안경 쓸 시기를 놓치면 시력은 더욱 악화됩니다"

'시력이 더 악화된다 말이지?'

은근히 안경사의 말에 압도당해 버렸다.


전문가의 의견이기에 당연히 따라야 할 순간이었다.

동시에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떠올랐다.

용불용설은 참으로 인상적인 내용으로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쓰면 쓸수록 진화하고 사용하지 않을수록 퇴화한다?'

시력도 문제였지만 외모도 문제였다.

안경사가 권하는 안경들을 번갈아 착용해보았다.

'이건 아닌데!'

'못생긴 얼굴에 안경까지 끼면 감당이 안되는데!'

아무래도 안경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좋아! 라마르키즘을 따라보는 거다'

당시, 안경사의 경고는 거스르기 쉽지 않았다.

시력이 더악화된다는 두려움도 무시 못했다.

일종의 시력을 건 도박이었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서적들 중에 '시력향상을 위한 요가' 종류들이 있었다.

결국은 지속적이고 물리적인 동작과 자극이었다.

매일 눈의 주위를 마사지해 주는 것이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시력을 위한 요가는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사이클을 타고 세상을 향해 나갔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길에서 지내게 되었다.

한결같이 멀고 고독한 여정이었다.

어깨에는 가방을 짊어지고 양손은 사이클 잡는 데 사용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손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궁여지책을 동원했다.

틈나는 대로 양 눈에 힘을 주어 보았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으나 계속 이어나갔다.


두 눈에 힘을 주어 양 눈을 크게 뜨기를 반복해나갔다.

'두 눈에 쌍꺼풀을 만들어 볼까?!'

중고등학교 때부터 와이셔츠 단추 구멍 같은 일자 눈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두 눈을 치켜뜨는 연습은 버릇이 되었다.

어느 항구에 도착하든 마을을 지나든 가리지 않았다.

낯선 타지에서 고독은 일과였다.

매일 고독감으로 새벽을 맞이하고

고독감을 여미면서 음식을 대하였다.


매일같이 하루 10시간 정도는 사이클 위에 있는 생활이 이어졌다.

틈만 나면 거듭적으로 두 눈을 크게 하여 치켜뜨기를 했다.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도 두 눈을 크게 하여 움직였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등 색깔이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에도

두 눈을 치켜뜨기는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국경에 도달할 때에도 두 눈을 위한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연말이 닥치고 성탄이라는 기념일은 지나갔다.

그렇게 1년씩 해가 바뀌었다.

작고 협소했던 두 눈은 고집이 어지간했다.

쌍꺼풀이 생길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홀로 외국에서 40살이 넘었다.


작은 두 눈의 눈꺼풀은 두툼했다.

두 눈과의 씨름을 멈추지 않았다.

지구의 곳곳을 다니면서 여전히 두 눈에 쌍꺼풀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초 두 눈은 전형적인 몽고인의 눈 모습이었다.

서양에서 만난 백인들 생각은 달랐다.

그것이 세상만사 이치이다.

반대의 것에 호감을 갖는 것이다.


그들은 그랬다.

'검은색을 가진 작은 눈 멋져요!'

처음에는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몰랐다.

그런데 더욱 많은 유럽인들을 만나면서 거짓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백인들 눈은 대부분 크고 쌍꺼풀을 가졌다.

중동 여인들도 대체로 커다란 눈을 가졌다.


두 눈에 쌍꺼풀이 있고 커다란 눈을 가진 유럽 여자들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백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표정도 살펴보았다.

백인들은 대화를 나눌 때 얼굴의 동작이 고정적이지 않았다.

손동작, 제스처와 얼굴의 변화가 역동적이었다.


대화에 맞추어 두 눈의 움직임도 확실하게 움직였다.

백인들의 대화 모습은 아시아인들의 모습과 달랐다.

아시아인들은 대화할 때 거의 제스처나 동작이 없다.

이에 반해 유럽인들은 거의 액션배우처럼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백인들의 감정표현은 역동적이었다.

평상시에 늘 얼굴표현들을 풍부하게 이용했다.

유전적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부모로부터 익힌 것이다.


'아하! 용불용설이 맞다!'

백인들은 모든 생활 속에서 얼굴에 연기력을 보태었다.

감정표현을 얼굴 표현과 함께 하였다.

감정에 따라 두 눈을 크게 활용했다.

서양인들은 쌍꺼풀이 우성인자이다.

서양인들은 커다란 두 눈이 우성화 되었다.

서양인들 후손에겐 작은 눈이나 쌍꺼풀 없는 눈이 나올 확률이 거의 없다.

지속적으로 서양인들의 눈과 코는 커져가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두 눈과 코가 크다.

드라마에서 스페인 여자들 눈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북부지역에서 눈 큰 여자들을 보았다.

프랑스와의 국경이 가까운 지역이었다.

여자들의 눈이 그렇게 달랐다.

두 눈이 옆으로도 길었지만 위아래 폭도 커다랬다.

'어찌 저리 눈이 커다랄 수 있지?'

보이는 여자들이 전부 영화배우 저리 가라였다.


길을 떠나서 다시 열심히 두 눈을 크게 뜨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두 눈을 계속 치켜서 뜨니 이마의 주름살만 늘었다.

주름살 무서워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지 않은 노력의 결과가 나타나긴 나타났다.

50살이 넘어서 겨우 쌍꺼풀이 생겼다.

비록 수술한 것처럼 뚜렷한 쌍꺼풀은 아니었다.


아직 짝짝이 비슷한 쌍꺼풀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길에서 틈틈이 노력했던 결과이다.

길에서 버려질 시간들을 유용하게 써본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삶에 적용해볼 가치가 높은 이론이다.

'인생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늦은 나이지만 이제 이전의 작은 눈이 아니다.

쌍꺼풀 수술 없이 쌍꺼풀을 만들었다.

두 눈을 위한 요가 덕분에 시력을 잘 보전하였다.

안경사의 겁주는 말을 듣지 않길 잘했다.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버티길 잘했다.

독서를 많이 한다.

글쓰기 좋아한다.

그래도 아직 안경을 착용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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