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먼지나부랭이의 고생
by for healing Oct 21. 2024
걱정 근심이 없는 삶을 원한다면 방법은 딱 두 가지라고 했다.
태어나지를 말던가, 죽던가~~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는 우주 속에 작은 먼지일 뿐이라고...
그런데 먼지라고 하기에는 우리네 삶이 고생이 너무 많다.
몸 아픈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이제 좀 살겠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나마 나는 이 나이까지 뒹굴고 발버둥 치고 악을 쓰면서 그런대로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이 녹록지 않은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딸들이 걱정이다.
얼마 전, 작은 딸에게 또 큰 어려움이 닥쳤다.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이...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던 아이...
이대로 하나님이 데려가시려고 하는가? 싶을 만큼 병치레가 많았던, 눈물과 기도로 키운 우리 딸...
지금은 건강하고 똑 부러지게 잘 살아가고 있던 아이...
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또다시 힘든 일을 겪었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통속적이고 구태의연한 틀에 박힌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 어떤 말과 위로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나도 겪어봐서 잘 아니까...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전에 딸아이가 병원에서 그야말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큰 시누이가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하나님께 맡겨야지 어쩌겠니?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니까 데려간다고 한들 우리가 어쩌겠니? 나도 기도할 테니까 ○○에미도 열심히 기도해~"
백번 옳은 말씀이다. 시누이라고 조카가 그렇게 아픈데 마음 안 아플 리 없다는 걸 나도 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거두어가셔도 할 말없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입장에서 볼 때, 그건 이론이고, 남의 이야기였다. 내 새끼가 죽어가는데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대처해지지가 않는다. 자식문제에 한해서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 앞에서 꼭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그게 위로였을까?
기도를 해도 자기보다 엄마인 내가 더 많이 하겠지, 기도해라? 그때 남편이 옆에서 됐으니까 "그만 가봐"하고 시누이를 보내지 않았으면, 진심 심한 말이 나올뻔했었다. 예민해져 신경이 날카로왔던 내게 그 말은 너무 아팠고 지혜롭지 못한 시누이의 위로였다.
나는 그때부터 어려운 일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기도하세요"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저 손만 잡아 주고 돌아선다. 그 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할 사람은 당사자인걸 알기에...
이번에도 딸이 모쪼록 잘 이겨내고 버텨내주길 옆에서 온 힘 다해 기도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줄 알기에 마음 아프고 저리지만 속으로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딱 한마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은 개뿔!! 나 이제 교회 안나가!!!"
악을 썼다, 딸아이가...
그러더니 며칠이 지난 후 기운 빠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했다.
"왜 하나님은 나한테 이렇게 힘든 일을 몰빵으로 주실까? 내가 너무 잘 견뎌내서 어디까지 견뎌내나 시험해 보시나? 이렇게 안 하셔도 나 하나님 잘 믿고, 착하게 사는데~"
그 말이 너무 가슴 시렸다.
'그럴 리가 있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정말 뻔하게 들리겠지만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그런 걸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부모의 속울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아이들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지혜롭게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헤쳐나간다는 사실이다. 내가 예전에 해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게...
'당분간 억지로 교회 가자는 말은 하지 말자,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어줍지 않은 위로나, '그래도 예배는 드려야지'라고 강요하지 말자' 했는데, 혼자 방에서 울다가도 찬양을 듣기도 하고 그다음 주부터 바로 예배도 드린다. 모태신앙의 힘인가? 대견하면서도 코끝이 찡하다.
"보셨죠? 주님도 대견하고 예쁘시죠? 꼭 더 좋은 축복 주셔야 해요. 우리 ○○에게 오늘의 아픔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큰 기쁨과 행복을 주셔야 해요"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절절한 기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너무 나약하다고 치부해 버렸던 나의 진부한 선입견을 딸아이가 아주 멋지게 깨 주었다.
아무 일 없던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물론 없었다.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딸아이의 불안정한 감정을 걱정스레 지켜보고만 있다.
남편과 나, 그리고 큰아이는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를 느낄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 있어주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밝고 명랑하던 우리 집의 '피스메이커, 해피 바이러스, 우리의 막내'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기다려 줄 뿐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여전히 너를 끔찍이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고, 아빠, 엄마, 언니가 있어. 이다음에 오늘의 아픔을 돌아보면서, 아하~그래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일 때문에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될 날이 꼭 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 가족 모두 이 악물고 버티자, 언제나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잖니? 그분은...
지금은 이해도 안 되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상황이지만, 그분은 항상 우리 생각보다 크시고 실수하지 않는 분이시잖니? 한번 살아내 보자꾸나!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
피범벅이 되어도 살아내 보자.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면 분명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다.
엄마인 내가 힘든 딸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그래도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혼자라고 느낄 때, 무심코 돌아보면 항상 너희 옆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