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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주의

솟아올라라~

by for healing

딸아이는 아직도 신경과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기도 한다.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치유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고여있는 물이 겉보기엔 맑아 보이지만 막대기로 휘저어보면 더러운 찌꺼기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한번 상처 입은 부위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소스라치게 통증을 느낀다.


답답한 것은 딸아이가 잘 견디고 있는 건지, 얼마나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보면 많이 극복한 것처럼 괜찮아 보였다가도 무심코 돌아다보면 뭔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우울해하기도 하고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다가도 오버하며 웃기도 하고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워낙 강한 성격인 데다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잘 이겨낼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딸의 아픔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본인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동일한 아픔과 배신감, 되갚아주고 싶은 강렬한 분노, 더 이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와줄 것이 없다는 무력감으로 인해 복잡한 심경이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회복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믿을 대상이 아니고 사랑할 대상이라고 했나 보다. 특히 상대가 믿었던 사람일 경우에는 내적 배신감으로 인해 몇 배나 그 고통이 깊고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수많은 배신과 좌절이 우리 삶 가운데에 찾아오겠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상처에 딱지가 앉고 이제는 좀 무뎌졌나 싶었던 아픔이, 웬걸~새로운 충격 앞에 가슴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내면 깊숙이 있던 슬픔과 분노와 아픔이 또다시 살아난다.

교회에 장애자녀를 둔 권사님이 계신다. 인지능력이 6,7살 내외의 그 아이는 어눌하지만 의사표현도 제법 하고 단순한 작업도 가능하다. 문제는 본인이 아주 어렸을 때에 자신에게 심하게 대했거나 놀렸던 사람을 잊지 못하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20년 전의 일도 다 기억하고 이제는 어른이 된 상대를 보고는 소리 지르며 화를 내곤 한다. 정식으로 그 사람이 그때일을 사과하고 나면 그제야 그 일을 잊고 넘어가는 희한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권사님은 정말 사랑과 정성으로 그 아이를 돌보며, 예배 중 아이의 돌발적인 이상행동에도 잘 다독이며 보듬어주는, 정말 옆에서 지켜보기에 훌륭한 어머니이다.

'내가 저 권사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저렇게 인내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까? 나같이 예민한 성격으로는 아이도 나도 함께 말라죽을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없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한 번씩 그 권사님이 폭발할 때가 있다. 가슴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운다. 그동안의 쌓였던 아픔과 억눌렸던 설움의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주위의 누구도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못한다.

권사님이라고 왜 장애자식을 향한 주위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을 모를까? 애써 밝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현실이 가끔은 감당 못할 슬픔과 탄식으로, 세상표현으로 신세한탄을 하며 권사님을 절망과 좌절의 깊은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그렇게 한 번씩 억눌렸던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또다시 사랑과 인내로 아이, 아니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6,7살 지능을 가진 딸아이를 돌본다.


그래~그래도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보며 느끼는 감사는 옳지도 않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분량의 감당해야 할 시험이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 하나님은 그것을 견뎌낼 힘도 분명 주셨을 터이다. 그분은 문제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다.

문을 닫으실 때 다른 창문을 열어놓으신 그분의 계획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는다.


우리 막내가 다시 솟아오르기를...

이깟 상처~이런 일 때문에 절대 쓰러지지 않을 딸을 믿기에, 이 일을 허락하신 분을 절대 신뢰하기에 오늘도 딸아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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