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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구나...

다중이

by for healing

내가 팔이나 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건 언제인가?

평상시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을 당하게 되면 비로소 그동안의 평안에 대한 감사가 솟구친다.


팔, 다리가 아프고 저려서 진통제 없이는 밤잠을 못 이룰 때 그제야

'아! 나에게 팔이 있었지, 다리가 있었지' 하며 그 귀한 존재를 깨닫는다.


작은 딸아이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름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보람을 찾으며 전처럼 깔깔거리기도 하고 스포츠경기를 보며 다혈질스러운 응원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이제 잠깐 쉼표를 찍어도 되나 싶었는데...

역시 세상살이는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얼마 전 혈압약을 받으려고 늘 다니던 동네병원에 갔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나 PSA수치가 높다면서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라는데?" 한다.

"그게 뭔데?" 했더니

"전립선에 관한 건데 수치가 많이 높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그 병원에서도 이 정도 수치라면 암일 가능성이 높다며 대학병원에 가보라며 의뢰서를 써주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병원을 예약하고 이것저것 검사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나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쯤이면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 우리 집뿐인가?'


전에 친정아버지가 의사였었기에 누구보다도 병원의 시스템이나 의사 선생님들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막상 우리가 다시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참 우스운 일이 많다.


세대가 바뀌어서 그런 탓도 있고 우리가 나이 든 탓도 있겠지만 병원 접수니 수납이니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그놈의 키오스크는 언제부터 생겼는지!!!


어찌어찌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또 어떤가?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입술을 그렇게 주목하여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없었다.

많아봐야 우리 큰딸보다 4~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은 의사들 앞에서 남편과 나는 무슨 죄인도 아니고,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초집중해서 경청하고 있다.


"정확한 건 검사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일단 기본적인 검사결과와 수치로 봤을 때 암일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검사날짜를 잡아보겠습니다"

멍~~

잠시의 멍 때리는 시간이 지난 후

"만약 암이라면 예후는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전이가 안되었고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가능성이 아주 높은 착한 암입니다"

착.. 한... 암....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은 컸다.


딸들이 직장에서 카톡으로 상황을 물어오길래 대충 이야기해 주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다들 자기 일처럼 함께 걱정해 주시면서 이럴 때에는 한 병원만 가볼 것이 아니라 여러 병원을 다녀보는 게 좋다고들 하시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주위의 이야기들이 마치 진리처럼 들린다ㅎㅎ) 감사하게도 각각의 방법대로 인맥을 총동원해 주어 그 분야에서 잘한다는 대학 병원을 예약해 본격적인 검사날짜를 잡고 돌아왔다.


걱정해 주시는 분들께 그때그때 병원 다녀온 결과를 전해드렸고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감사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악하게 살지는 않았나 보다. 이럴 때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기도와 사랑으로 큰 힘이 되어주시는 걸 보면...'이었다.



퇴근하고 온 딸들이 이리저리 알아보고 검색해 보더니 그래도 빨리 병원 가서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며 아빠정도수치면 잘은 몰라도 수술하면 완치된다고 안심시켜 준다.

아직 검사해 봐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니까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서로 위로하고 다음 병원날짜를 기다리기로 했다.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어지간한 환자는 예약하고 검사날짜 기다리다가 지레 죽겠다는 생각이 갈 때마다 든다.

다행히도 의료대란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만나야 할 의사 선생님들은 제자리를 지켜주고 계심에 감사했다.


하루는 폐검사, 하루는 심장, 하루는 순환기... 날짜가 안 맞아 검사마다 다른 날을 예약해서 다니며 병원을 세 군데나 순례하고 다니다가 결국 가장 좋다는 병원으로 마음을 정하고 조직검사며 MRI며 뼈전이검사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아직도 해야 할 검사가 네 가지나 남아있다.


그 과정에서의 초조함과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기도로 이겨내며 다음 검사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당사자인 남편이 불안해할까 봐 남편 앞에서는 별일 아닐 거라고, 혹시 암이라고 해도 전이만 안 됐으면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안심시키면서도 돌아서면 걱정과 불안에 밤잠을 설친다.

신앙적인 부분은 또 어떤가?

별일 아니게 도와달라고 우리 모두의 기도가 기적을 낳고 이로 인해서 나의 신앙의 지경이 더 넓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갑자기 다중이처럼

"아~진짜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으로는 부족하세요? 남편에게까지 무슨 일 생기면 저..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예요!!!!"


ㅎㅎ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미친 사람이 따로 없다.

감사와 불평이 번갈아 툭툭 나온다.

그동안의 나의 믿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열개를 받아놓고 한 개가 부족하면 땡깡을 부리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다 다시 정신줄을 잡고 손을 모은다.

"하나님~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저한테는 주님밖에 없는 거 아시죠? 도와주세요..."


오늘도 결과를 기다리며 감히 하나님을 상대로 다중이의 철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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