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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잘하는 아빠와 운동 못하는 엄마

체육시간이 싫어...

by for healing

우리 가족은 스포츠를 좋아한다.

다만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젊었을 때 운동을 잘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에만 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체력장'이라는 게 있었다. 남편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는지 100m를 12초에 뛰고 턱걸이도 잘하고 해서 당시에 체력장에서 특급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본인 피셜이다.ㅎㅎ

거기에 반해 나는? 음~~ 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키가 큰 편이었다. 지금은 키가 큰 여자들이 많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자 키 165cm는 큰 편에 속했었나 보다. 반에서 농구선수나 배구선수를 뽑을 때에는 언제나 담임선생님이 나를 뽑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공을 잡고 한 번 움직이면 으응? 고개를 갸웃하셨고 잠시후면 어김없이 나오는 호루라기를 불며 하는 이야기가

"○○○! 너는 빠져!! 허우대는 멀쩡한데 왜 이렇게 못해??"였다.

누가 뽑아달랬나?

100m는 19초 정도, 던지기도 나름, 있는 힘껏 던진다고 했는데 막상 내 손을 떠난 수류탄(물론 진짜 수류탄은 아니고 ㅋㅋ이걸 아는 분들은 연식이 좀 있으신 분들일 듯ㅋㅋ)은 야속하게도 바로 코 앞에 떨어지곤 했다.


100m 달리기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많다.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못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같이 한 줄에 서있던 친구들이 하나씩 내 앞으로 치고 나갈 때의 그 쓸쓸함...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데... 공책은 못 받아도 나도 손등에 도장받고 싶은데, 3등까지만 찍어주는 야속한 선생님이 미웠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너무 긴장해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에 놀라 주저앉지를 않나, 뛰다가 시계줄이 풀어져 달리기는 못할지언정 시계를 잃을 수는 없기에 시계줄을 끼우면서 뛰지를 않나...

그런데 제일 억울했던 건 꼴등으로 들어왔다고 맞고, 성의 없이 뛴다고 벌서고, 선착순 몇 명이라는 벌칙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계속 뛰었다는 거다. 지금 돌이켜봐도 억울하다.

누구에게나 잘하는 부분이 있고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큰 딸은 그나마 아빠 피가 좀 있는지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다. 허들경기에서 1등을 했을 때 나는 우리 애가 아닌 줄 알았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아 운동에는 젬병이다. 달리기 꼴등은 물론 겁도 많다.

한 번은 피구시간에 공이 무서워서, 안 맞았는데 본인이 맞았다고 스스로 아웃을 선언하고 나가려는데 쓸데없이 공정한(?) 선생님이 '아냐 아냐, 네가 맞은 거 아니야'하며 도로 들여보낸 적도 있었단다.

운동회날, 엄마랑 딸이 함께 뛰는 순서가 있었는데 결과는 뻔했다. 작은 아이 손을 잡으며

"엄마가 나중에 공책 많이 사줄게~오늘은 그냥 즐겁게 노는 거야, 알았지?" 했다.

꼴등 엄마와 꼴등 딸이 뛰는데 무얼 더 바래? 미리 각오를 다졌다.

헐~~6팀이 뛰었는데 앞에서 욕심을 내던 두 팀이 엉겨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우리 모녀는 4등이라는 큰 업적을 남긴 기억이 있다.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좋아했는지~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1등 한 줄 알았을 거다. 그리고 우리 모녀는 1등으로 들어온 모녀보다 피로도는 훨씬 심해 보였다는 웃픈 이야기...


여하튼 이런 우리 가족이 아주아주 열광하는 종목이 있으니 바로 '프로야구'이다.

문제는 응원하는 팀이 다르다는 건데 나는 프로야구 창단 때인 1982년부터 MBC청룡, 지금의 엘지트윈스를 응원하고 남편은 해태 타이거즈, 지금의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한다.

그 와중에 우리 딸들은 엄마를 닮은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 새인가 엘지를 응원한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나는 분만실에 들어가는데 남편은 대기실에서 해태타이거즈 경기에 빠져 있었다면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덕분에 작은 딸이 그리 야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늘 남편은 투덜댄다.

"다른 집은 보통 남편이 응원하는 팀을 부인이 같이 응원하던데 우리 집은 어떻게 여자 셋이 똘똘 뭉쳐서 3대 1로 나뉘냐?"

듣고 보니 섭섭할 만도 한데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는 남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야구를 좋아하고 엘지를 사랑한다. 남편 또한 기아타이거즈의 거의 열혈팬에 가깝다. 남편은 일 때문에 직관을 못할 때가 많지만(대신에 TV로는 꼭 보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밤에 하이라이트로라도 경기내용을 확인할 정도이다). 반면에 나는 딸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 일도 많다. 내가 생각해 봐도 우리 가족은 좀 지나치다. 작은 딸은 대학 다닐 때에 자주 경기장을 다녔고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이 한동안 잠실야구장, 엘지응원 전광판에 나오기도 했다. 대형스크린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나오길래 자세히 보니 우리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남은 우리 가족들의 반응

"쟤 누구니?○○이 아니야?" 그야말로 쟤가 왜 거기서 나와? 였다.

야구에 얽힌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 하아~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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