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결혼 행복 유통기한 15년
엄마의 폭탄선언
by for healing Jul 25. 2024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아빠였기에, 그래서 우리 남매도 아빠를 너무 사랑했기에 사랑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실망이 컸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여전한 일상이 계속되었지만 아빠의 바람기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바보 같은 궁금함이 생긴다.
나는 햇빛이 쨍한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하늘이 시커메지고 을씨년스럽게 바람이 부는 날씨를 좋아한다. 그런 날, 커피 마시며 창밖으로 바깥구경하는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좋은 '바람'...
왜 남녀사이에 일어나는 불륜을 '바람났다, 바람피운다'라고 할까? 그 좋은 바람을 왜 거기다 비유할까? 듣는 바람 기분 나쁘게...
친절하게도 엄마는 이번에도 나에게만 아빠의 두 번째(?) 바람을 알렸다. 하기야 오빠의 잠재적 분노가 무서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에 딸에게라도 말하지 못했으면 엄마는 화병으로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후에 화병을 앓긴 하셨지만...
작은 도시이기에 소문이 빨리 퍼지는 것을 걱정했는지 이번에는 여자를 집안까지 들인 듯했다. 엄마가 서울에서 내려가보니 집안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원래 불륜녀들은 집안의 불화를 일으키기 위해 작정하고 흔적을 남긴 다고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엄마는 천성적으로 악을 쓰고 남편에게 물건을 던지며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너는 인간도 아니야' 한 마디 던지고 아무 일 없던 듯 부부의 삶을 연기하기로 했다. 자식들 결혼시키고 내가 이혼 서류 내밀 때까지 '돈 버는 기계'의 역할만 하라고 아빠에게 폭탄선언을 하면서... 돌같이 굳은 아내와 발길 끊은 아들... 그러면 나는 어땠었나?
음~나는 여전한 평화지킴이 막내딸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아빠에 대한 실망, 미움, 배신감 등등을 철저히 감추고 여전히 응석 부리고 의미 없는 내 일상을 주절대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집안의 불씨를 온몸으로 막아 냈다. 엄마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기에.. 너라도 없었으면 우리 집이 어떻게 될 뻔했냐며 눈물 흘리는 엄마를 돕기 위해..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끝나갔고 아빠의 바람은 네버 엔딩 훨훨 날개를 달았다.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던 아빠의 불륜녀들과의 시간을 겪으면서 우리 남매는 아픔 속에 성장했고 서로 무관심 속에 '마이웨이'를 걸었다. 오빠는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했고 나도 대학에 진학하여 겉보기에는 잔잔한 아니, 이제 더 이상은 화낼 일도, 터질 일도 없을 시간이 흘러갔고, 대학 졸업을 앞두었을 즈음 엄마는 나에게 좋은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을 꺼내었다.
결혼?
결혼?
결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