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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Nov 22. 2022

수용소에서 살아남기-이반 데니소비치의 생존법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스물네 시간을 버티어가는지. 8년여의 기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그의 생존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용소에 들어가기까지


슈호프는 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하던 중 독일군 포로로 잡혔고, 몇 명의 동료와 탈출하였는데, 이들 중 슈호프와 다른 한 명만이 살아서 구출되었다. 그런데 포로가 되었다가 살아남은 것에 반역죄가 적용되었다. 슈호프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에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 풀려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했고, 수용소로 보내졌다. 탈출 과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었다면, 조국의 죄 뒤집어씌우기에 희생되는 것은 불행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슈호프의 신념이었던 듯하다.


슈호프의 생존법


- 긍정적인 기분(행복감 등)을 느끼게 하는 경험 만들기


수용소 생활에서 행복감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8년 간의 수감기간 동안 그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처세술도 체득했다.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상황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는 행운이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반 데니소비치가 느끼는 행복감의 내용과 질은 자유민이 느끼는 그것과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가며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1. 감사


슈호프는 5시 기상 시간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불 속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타타르인 간수에게 걸려 '3일간, 노동 영창!'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노동 영창은 중영창보다는 수월했지만 그래도 그는 억울한 마음으로 좌절감을 느끼며 간수를 따라간다. 그런데 간수는 영창을 보내는 대신 본부 건물 간수실의 지저분한 마룻바닥을 물청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간수실은 벽난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따뜻한 곳이었다. 슈호프는 노동 영창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타타르인 간수에게 이렇게 말하며 몸을 조아린다.


"감사합니다, 간수님! 앞으로는 절대로 늑장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수용소에서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 죄수 슈호프는 간수가 영창 대신 물청소를 시키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 그렇게도 고맙고 기쁜 일이었던 것이다.


2. 황홀감


아침 점호가 끝나고 수용소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기 전, 슈호프는 영화감독 출신의 부유한 죄수 체자리가 담배를 피우는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차마 담배 한 모금 달라고 대놓고 말은 못 하고 그가 피우는 모습을 곁눈질로 계속 지켜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슈호프는 담배가 타들어가서 양이 줄어들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이 순간에는 자유보다 담배꽁초 한 모금을 빠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표현돼 있다) 이때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페추코프가 담배 냄새를 맡고 다가와 체자리에게 한 모금만 빨게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부탁한다. 체자리는 페추코프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아무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슈호프에게 거의 바닥난 담배꽁초를 건넨다. 슈호프는 감격하여 꽁초만 남은 담배가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바닥에 들고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다. 담배연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굶주린 온몸 전체로 퍼져가는 것을 느끼며 황홀감에 온몸을 떤다.


3. 만족감


공사장에서 노동을 할 때 슈호프는 숙련된 기술자로서 벽돌을 능숙하게 쌓아 올린다. 반드시 잘해야 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슈호프는 자신이 맡은 일을 대충 하지 않고 꼼꼼하게 제대로 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4. 기쁨


하루 노동을 마친 뒤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신체검사를 하는데 슈호프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주워서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던 부러진 쇠줄 칼 토막이 있었다. 슈호프는 버릴 것인가, 들고 들어갈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그냥 갖고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신체검사에 이력이 났을 것으로 보이는 늙은 간부 앞으로 간다. 장갑의 한쪽에 쇠줄 칼 토막을 집어넣었는데, 발각되면 견디기 힘든 영창 생활을 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는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싶은 심정에 잠긴다. 간수가 문제의 장갑을 막 만지려는 순간 다음 조는 대기하라는 소리가 들리자 늙은 간수는 손길을 멈추고 그냥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슈호프는 발각되지 않은 것이 너무 기뻐서 날아갈 듯이 가볍게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5. 수고로 얻은 대가


저녁이 되어 막사 안으로 돌아와 있을 때가 죄수들에게는 가장 배고픈 시간이었다. 슈호프는 저녁 식사 전의 이 자유시간에 소포인도소로 달려간다. 부유한 죄수 체자리의 소포가 왔을 경우를 대비해 그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수고로운 일이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가가 따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슈호프는 쉴 수도 있는 시간을 애써서 활동을 한 것이었다. 슈호프 자신은 한 번도 소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슈호프는 체자리에게 자기가 서있던 자리를 인계하고 그의 몫의 저녁식사인 양배춧국을 자기가 먹을 수 있게 된다.


6. 안도감


슈호프는 막사 안에서 누군가 빵을 도둑맞아서 소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혹시 자기 빵도 도둑맞았는지 살펴보는데, 매트 속에 깊숙이 넣고 실로 꿰매 둔 덕분에 빵을 도둑맞지 않은 것을 보고 기뻐한다.


7. 감격


저녁 식사 시간, 슈호프는 식당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다행히 자기 반원들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고, 양배춧국을 빨리 받기 위해 쟁반을 새치기하는데도 성공한다. 슈호프는 건더기가 조금이라도 많은 양배춧국을 제 앞에 놓았다가 가져다 먹기 시작한다. 체자리 것까지 두 그릇을. 슈호프가 경건하게 양배춧국을 먹는 모습을 옮겨보겠다.


   슈호프는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얹는다. 한쪽 국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한번 휘저어 확인한 다음, 다른 그릇에 담긴 국도 똑같이 확인한다. 웬만큼은 들어 있다. 생선도 걸려든다. 보통, 저녁에는 아침보다 국이 더 멀겋게 마련이다. 조반을 먹이지 않으면, 죄수들을 부려먹지 못하기 때문에 아침은 좀 더 먹이고, 저녁은 좀 부실하게 먹이기 일쑤다. 좀 부실하게 먹였다고 죄수들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테지!

   두 그릇에 담겨 있던 국물만을 모두 마신 다음에는 한쪽 그릇에 다른 쪽 건더기를 옮긴다. 그다음, 그릇을 흔들어 정리를 하고 다시 숟가락으로 모조리 긁어낸다. 이제서야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다른 쪽 그릇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젠 곁눈질로 쳐다볼 필요도 없고, 한 손으로 국그릇을 감싸 안고 있을 필요도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젠 옆사람의 그릇으로 눈이 간다. 옆에 앉은 녀석의 국은 거의 국물뿐이다. 독사 같은 놈들! 죄수는 다 같이 죄수인데, 이렇게 차별을 하다니!

   슈호프는 남은 국물과 함께 양배추 건더기를 먹기 시작한다. 감자는 두 개의 국그릇 중에서 체자리의 국그릇에 하나 들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게다가 얼어서 상한 것이었지만, 흐물흐물한 것이 달짝지근한 데가 있기도 하다. 생선 살은 거의 없고, 앙상한 등뼈만 보인다. 생선 지느러미와 뼈는 꼭꼭 씹어서 국물을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 뼈다귀 속에 든 국물은 자양분이 아주 많다. 이것을 깨끗이 처치하려면,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슈호프로서는 달리 서두를 일도 없다. 그에게 오늘은 명절과 다름없는 날이다. 점심도 두 몫을 먹었고, 저녁도 두 몫을 먹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다른 일을 뒤로 좀 미룬다고 해서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175~176페이지 중 일부)



8. 행복감


밤 아홉 시 취침 점호 시간에, 슈호프는 소포로 받은 물건들을 늘어놓았다가 점호 때문에 치우지 못하고 당황하는 체자리를 도와준 뒤, 그 답례로 비스킷 두 개와 설탕 두 덩어리, 그리고 소시지 한 개를 받는다. 슈호프는 자리에 누워, 소시지를 깨물어 먹으면서 진짜 고기 맛을 음미하며 행복감에 젖는다.

이 날 하루 동안은 슈호프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을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208페이지 중 일부)





위에 열거한 예들 외에도 많은 장면에서 슈호프는 어떻게 행동해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이 종료될 수 있는지를 알아서 처신을 잘한다. 슈호프가 얼마나 노련한 죄수인지는 입소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전직 중령 출신의 부이노프스키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죄수가 되기 전에는 군함에서 군림하는 권위적인 사람이었던 부이노프스키는 수용소 내에서도 사람들에게 명령조로 말하기 일쑤였으며, 간수가 한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했다가 중영창 열흘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슈호프는 중영창 열흘 형벌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며, 사람의 몸을 회복 불가능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영창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전직 중령은 밤이 되어 끌려가기 전까지도 체자리가 받은 소포의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여유를 부리다가, 반원들에게 인사까지 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간수를 따라나간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무슨 대단한 신념을 가진 정치범도 아니었고, 옥살이를 버티고 나가면 반드시 해야 할 목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폭정일지언정 현실에 순응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이었다. 10년 동안을 매일 비슷하게 멀건 죽을 먹으며, 중노동을 하며, 점호와 신체검사를 받으며, 가끔은 담배를 얻어 피며, 억울해도 참으며, 눈치껏 살아낸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서 석방이 아니라 유형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절망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인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버텨내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변론이고, 폭압에 대한 복수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51년인데, 스탈린이 1953년에 죽은 것을 보면 살아서 스탈린의 죽음을 보는 것이 일종의 복수가 될 수도 있었겠다. 물론 스탈린의 사후에도 상황이 썩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반 데니소비치의 삶을 보며,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절망밖에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악의를 품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베풀며 사는 삶이 더 낫다는 것도.



참고서적: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영의 옮김/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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