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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Dec 06. 2022

 더크 스트로브,지나치게 오지랖 넓은 사람이 겪는 불행

소설 속 인물 탐구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더크 스트로브     


더크 스트로브는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파리에 있는 동안 그의 예술가적 위대성을 알아보고,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서 그에게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다 보면 찰스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을 알아보는 그의 혜안이 참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그가 참 한심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네덜란드 출신인 더크 스트로브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썩 잘 그렸다. 그의 고향은 네덜란드의 어느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아버지는 5대째 가업을 이어 목수일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청결광으로 집안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유지하는 분이었다. 더크가 그림에 소질을 보이자 어머니는 선물로 그림물감을 사주었고, 그가 그린 그림을 목사와 의사, 판사 등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더크의 생활비를 대느라 부모님은 늘 쪼들리는 생활을 했다. 더크가 처음으로 전람회에 그림을 출품했을 때는 가족들이 전부 구경을 고, 어머니는 그림을 보고 우셨다. 그렇게 미술에 대한 소양을 넓혔고, 예술을 보는 안목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더크 스트로브는 정작 자신은 무척 상투적이고 이상적인 밝은 세계를 그렸으며, 팔리는 그림만을 그렸다.


 그의 외모와 성격은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의 예술성 부족한 그림도 한몫 했겠지만) 늘 친구들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았다. 친구들은 그를 놀리면서도 그에게 돈을 빌려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형편이 되는대로 돈을 빌려주었다. 더크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선량하면서도 천성적으로 순한 기질에 예술을 보는 안목만 뛰어났다. 외모도 남성으로서는 썩 매력적이지 않은 땅딸막하고 통통한 모습에 서른이 채 못 된 나이였음에도 이마가 벌써 벗어지고 있었다.

그는 어느 영국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여자였고, 오도 갈데없는 형편에 처했을 때 더크를 만나 안정을 찾으면서 그와 결혼까지 한 여성이었다. 더크는 자신의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아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했다. 세상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여겼다. 실제보다도 더욱더.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더크는 찰스의 그림에서 엄청난 예술성과 불멸의 작품의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그가 아무리 자신을 놀려대도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찰스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빌려주었다. 한 번은 찰스가 자기 집에 돈을 빌리러 왔는데 더크는 그에게 자기 그림을 평가받고 싶었다. 상인들에게 잘 팔리는 자기 그림을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더크는 위대한 예술가인 찰스가 어떻게 평가해줄지 궁금했던 것이다. 더크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던 찰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는 이것이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자신의 그림은 논할 가치도 없는 졸작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이때부터 더크의 아내도 찰스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찰스는 더크를 볼 때마다 지나치다 싶게 놀려대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너무 심하게 놀려대는 바람에 마음이 제대로 상한 더크는 찰스와 심하게 다투고 그와 다시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누그러진 더크는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낼 위대한 예술가 찰스 스트릭랜드가 안쓰럽게 여겨졌고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같이 지내고 싶었다. 더크는 찰스를 만나려고 수소문하던 중 그가 몹시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더크는 한달음에 그의 집을 찾아 달려갔고, 열이 펄펄 끓고 며칠간 음식도 거의 못 먹고 죽어가고 있는 찰스를 발견했다. 이대로 두면 곧 죽을 것 같아 보이는 위대한 예술가를 더크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돌봐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아내의 동의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아내는 지나치다 싶게 완강하게 찰스를 집에 데려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차라리 자기가 집을 나가겠다며 돕고 싶으면 그의 집으로 가서, 혹은 입원을 시켜 혼자 도우라고 했다.


이때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엇이든 지나치다 싶게 오지랖이 넓고 어리석기까지 했던 더크는 찰스를 데려와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자, 다른 어떤 고려는 제쳐둔 채 아내를 설득하고 싶은 일념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아내의 상처마저 건드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가 전에 오도 갈데 없이 힘든 상황이었을 때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당신이 도울 차례라고 정색하고 말했다. 이 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어서 아내의 마음을 바꾸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로 인해 그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것을 잃어버리고 상처를 받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성질이 고약했던 찰스를 달래서 제 집안으로 들이는 것도 일이었고, 죽어가는 그를 소생시키기 위해 좋은 것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그의 더러운 성질을 다 받아주며 돌보는 것도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렇게 6주 정도를 고생을 하고서야 찰스 스트릭랜드는 차차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좋아지는 데는 더크의 아내인 블란치의 수고도 더크 못지않게 컸다. 그녀는 일단 찰스를 돌보기로 작정하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병자를 돌보았다. 더크는 그런 아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내 블란치와 찰스는 마주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서너 시간을 앉아있곤 했는데 더크는 그것이 참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찰스의 몸이 회복되면서 이상하게도 자신이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아내와 찰스가 싫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더크는 좀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찰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더크도 옆에서 같이 그렸는데, 찰스는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된다며 더크를 쫓아내기까지 했다.


어느 날,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더크는 이제 몸이 좋아졌으니 나가주면 좋겠다고 찰스에게 말했다. 찰스는 군말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이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더크의 아내 블란치가 찰스를 따라나서겠다고, 더 이상 당신과는 살 수 없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더크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보름쯤 전부터 두 사람의 눈치가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블란치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찰스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굴었다. 더크는 아내를 달래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아내는 '당신이 찰스를 우리 집에 들였던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며 모든 것을 더크의 탓으로 돌렸고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단호하게 말했다. 더크는 찰스가 뭐라고 한마디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가 모른척하자 너무 화가 나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달려들었다가 내팽개쳐져서 꼴이 더 우스워지고 말았다.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크는 또 한 번 지나친 오지랖을 드러냈다. 그는 아내를 몹시 사랑했고, 아내가 찰스의 허름한 방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진 돈의 절반을 아내에게 주고 자기가 나갈 테니 둘이서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하고 집을 나왔다.


더크는 이 상황이 비참하고 슬펐지만, 찰스가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었기에 아내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리라고 확신했다. 그때를 대비해 아내 주변에 머물기로 했다. 아내가 자기 도움이 필요하면 즉시 행동하려고. 그는 아내가 장을 보러 다니는 골목에 서 있다가 아내에게 애원을 해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불쌍한 처지를 하소연하며 남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해서 동정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아내 블란치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그녀는 뜯어보지도 않았다. 더크는 그런 사람이었다. 몹시 괴로운데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살이 피둥피둥 쪄서 우스꽝스러운.

그렇게 세 달여의 기간이 지난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블란치의 가족으로써 더크가 연락을 받고 집에 갔을 때는 의사와 경찰이 와 있었고, 블란치가 자살을 기도해서 병원으로 실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블란치는 더크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블란치와 찰스가 심하게 다툰 뒤 찰스가 집을 나가 버리자 홀로 남은 블란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거였다. 더크는 심하게 충격을 받았지만 아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블란치는 더크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성대가 타버려서인지 목소리도 변해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통받다가 블란치는 세상을 떠났다. 더크는 그녀가 죽기 전 혼수상태일 때 병실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타들어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장례를 치르고 나자 더크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네덜란드의 고향집으로 떠나기로 했다. 텅 비어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서 집안을 살펴보자 깔끔한 성품의 블란치가 깨끗하게 정리정돈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집안을 정돈하고 마지막 시간을 준비한 블란치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크는 고통스러웠다. 스튜디오로 갔을 때 벽 쪽에 기대 놓은 그림 하나가 있었는데 가서 보니 그것은 찰스가 그린 블란치의 누드화였다. 더크는 순간적으로 질투심과 분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림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용 나이프를 들어서 그림을 찢어버리려다가 멈추고 말았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도저히 그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도 예술을 사랑하고 또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에서 엄청난 예술성을 발견하자 그것을 찢으려고 했던 자신의 마음에 오히려 분노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찰스 스트릭랜드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과 함께 네덜란드로 가자고 제안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더크는 예술 앞에서는 배알도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찰스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블란치의 누드화를 더크에게 가지라고 했다.

더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네덜란드의 고향집, 어머니의 위로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더크 스트로브 같은 사람이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요즘같이 세상이 복잡하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든 세상에서 더크 스트로브처럼 순박하고 오지랖 넓고 관대한 사람이라니.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은 너무 일방적으로 잘해주어서 여성을 질리게 하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행동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적당히 조절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겠다.

그래도 이런 사람은 죄는 덜 짓고 살 듯 싶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아니, 그가 한 무모한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블란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니, 선량한 듯 보이는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착하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왜 이런 사람은 외모마저도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외모라도 좀 단호해 보였으면 그리 우스워보이진 않았을 텐데. 외모와 성품이 거의 맞아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사람이 찰스 스트릭랜드 같은 남성적이고 다혈질적인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한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가 조금만 덜 남을 돕는데 열성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가 찰스 스트릭랜드를 집에 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블란치가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아있었을까? 그리고 둘은 계속 행복했을까?

찰스 스트릭랜드가 전한 바에 의하면 블란치는 더크가 행복해하는 만큼 그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더크가 자신에게는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기에 남자로서 별 매력이 없어도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편도 아니고 형제나 자식도 아닌, 게다가 성질 더러운 덩치 큰 남자의 병간호를 그토록 끔찍이 아끼는 아내에게 맡기다니. 부인에게 못할 짓을 시킨 거였다. 이런 일을 시킨 더크의 내면에 있는 숨겨져 있는 자신에 대한 경멸감을 간파하고 블란치는 더크를 마음에서 떼어내 버렸는지도 모른다.


 찰스 스트릭랜드를 알아보고 그에게 도움을 준만큼 상처를 받았던 더크 스트로브라는 인물은 소설 <달과 6펜스>를 읽고 나면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등장인물이었다. 또한 지혜롭지 못한 선행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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