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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Mar 10. 2023

그녀는 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중에서,  '한나'에 대하여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 중 하나이다. 결혼할 때는 기쁨과 행복감이 넘쳐 그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막상 결혼해서 살다 보면 자신이 엄청난 모험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특히 결혼생활에서 만족감보다 힘듦을 더 느낄 때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소설 <나의 미카엘> 속 여주인공 한나에게도 결혼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미카엘을 만나고 결혼을 할 당시에는 빛나는 환희가 넘쳐났지만, 결혼생활이 그녀에게 삶의 충만함을 안겨주지 못했을 때 그녀는 모험 속에서 헤매는 탐험가처럼 방황한다.





소설 <나의 미카엘>의 여주인공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한나)는 자신이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죽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왜 그녀는 이토록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한나는 미카엘과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그레타 가르보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웃음이 나와서 어쩔 줄 모른다. 한나가 일하는 유치원 원장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도 그녀의 얼굴에 설렘과 기쁨이 가득한 것을 알아볼 정도로 그녀는 미카엘을 만나 행복하였다. 그런데 미카엘과 결혼을 약속한 후 처음으로 미카엘의 여사친을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미카엘에게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미카엘은 친구 부부와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는 두 시간 동안 한나는 안중에도 없었고, 친구 집을 나와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밤길을 걸어가면서도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어 뒤따라 오는 한나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한나가 미카엘을 크게 부르고 힘들다고 호소하자 그제야 그녀를 자기 외투로 감싸 안는다.


결혼 후 한나의 일상은 평온한 듯 보였지만 그녀는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일이 많았다. 3개월쯤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그의 고모들 중 가장 성격이 강한 제니아 고모는 한나가 무책임하다고 질책하며 낙태를 권유하기도 한다. 부부의 형편은 남편의 학업과 아이 양육을 병행하기에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나는 대학에서 강의 듣는 것을 그만둔다. 이때부터 한나는 집안일에도 소홀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임신 기간은 몹시 힘들었고, 한나는 미카엘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임신 마지막 달에는 자신이 추하다고 느낀다. 한나의 어머니가 와서 집안일을 도와준다. 출산 후 한나는 합병증으로 열흘간 입원을 한 뒤 아들 야이르와 함께 집에 돌아온다. 한나는 몸이 회복되지 않아 집에서도 계속 누워 지냈고, 제니아 고모와의 갈등으로 어머니가 일찍 떠나버리자 미카엘이 아이를 돌보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지독하게 피곤한 나날들을 보낸다.


아기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란다. 빠듯한 형편인데도 한나는 이따금씩 쇼핑으로 많은 돈을 써버려 미카엘을 당황시킨다. 미카엘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를 심하게 질책하지는 않는다. 한나는 환상과 번뇌가 뒤섞인 꿈들로 괴로워한다. 한나는 사라젤딘 유치원에서 하루 다섯 시간씩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돈이 조금 모아지는가 싶으면 한나는 비싼 물건을 사서 돈을 낭비한다. 한나는 문학도로서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단치히라는 도시의 공주 이본 아줄라이가 되어 남편과 시아버지 등 남자들을 부리는 꿈을 꾸었으며, 때때로 어린 시절의 쌍둥이 아랍소년들을 부하로 두고 활약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가면서, 한나는 권태감이 극에 달한 듯 히스테리 증상까지 보여 남편 미카엘을 당황시킨다.


한나는 하루하루의 똑같은 음울한 날들을 지루해한다.


 한나가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공부를 그만두고 결혼생활의 우울과 권태감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는 사이에, 남편 미카엘은 계속 공부에 매진하여 한 계단씩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다고 미카엘이 집안일에 무심하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한나가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아이 양육에 소홀한 것들을 미카엘이 몹시 피곤한 생활 속에서도 다 감당하니까 말이다. 미카엘은 재미있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학구적이며 머리도 좋아서 전공인 지질학을 계속 공부하여 결국 교수까지 되는 남성이다. 그리고 한나가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그녀를 아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나가 심리적으로 힘들 때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한다. 그 정도면 남편으로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결혼 이듬해에 낳은 아들 야이르도 건강하게 잘 자란다. 아이로서는 다소 냉정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무척 똑똑한 아이다. 이스라엘에 전쟁이 나자 미카엘이 군에 소집되어 얼마간 떨어져 지내기도 하지만, 미카엘은 무사히 귀환하여 학업과 가정에 성실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간다. 집안 형편도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차츰 좋아져서 책의 말미에는 가정부를 두고, 새 집으로의 계약도 성사된다.




소설은 평범한 어느 중산층 가정의 행복한 사랑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래서 한나가 방황하고, 힘들어하고, 권태와 고독감에 히스테리증상까지 일으키는 것이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이만하면 행복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삶인 것 같은데. 조금 이른 나이에 주부가 되고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아이 양육에 소홀한 한나의 빈자리를 미카엘이 채워주지 않는가.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미카엘 정도 되는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지 비교가 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가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남편이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나의 마음은 힘들고 행복하지 않았고, 그 힘든 마음을 작가는 한나가 가끔씩 경험하는 꿈과 몽환적인 상상 속에서 드러내고자 애쓴다.


나는 한나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곰곰이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면서, 싱크대의 음식물찌꺼기받이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는 중에 갑자기 마음속에 떠올랐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했구나. 사람들이 '그 좋은 직장을 왜 벌써 그만두느냐, 왜 자꾸 스트레스를 받느냐, 그만하면 걱정 없이 살겠고만.' 이런 말들을 했지만, 나 자신은 삶에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고, 내가 꿈꿔왔던 삶과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곤 했었지. 한나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그녀는 커서 남자가 되고 싶었다. 쌍둥이 아랍 소년들 위에 군림하였듯이, 남자 어른이 되어 세상을 자기 발아래 두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몽상 속에서 어느 도시국가의 공주가 되어 어린 시절의 아랍인 쌍둥이를 부하로 두고, 미카엘 스트로코프(어느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 같음. 소설 속에서는 남편 미카엘을 상징하는 것 같음)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시아버지를 시종장으로 부리기도 하고, 자신의 명령에 따라 전쟁이 수행되는 그런 도시에서 활약하는 환상에 잠기면서 현실의 권태를 잊으려고 했다. 가끔은 환상 속 등장인물들에 의해 능욕을 당하기도 하면서.          


그녀는 음울할 때마다 비현실적인 몽상에만 사로잡힐 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설 속에서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편에 대하여 남매 같은 사이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이 무미건조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남매 같은 사이라고 보기에는 좀 억지스럽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중년을 지나면서는 한나와 미카엘 같은 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녀의 미카엘에 대한 실망감은 너무 빠른 감이 없지 않다. 10년이나 결혼생활을 했지만 기껏해야 서른 살이 아닌가. 하숙집 여주인의 경고처럼 그녀는 너무 경솔한 결혼을 한 것일까? 너무 빨리 결혼이라는 모험의 세계로 뛰어든 것일까?




그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삶의 음울과 권태로 인해 겪게 된 '실존적 공허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아래와 같은 설명이 나온다.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된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161p)」


공교롭게도 소설 속에서 한나는 위의 설명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겪는 좌절감을 형편에 맞지 않는 과소비로 해소하기도 하고, 남편을 대상으로 거칠게 성적인 탐닉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잊지 않았다>로 표현되는 그녀의 삶에의 의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일을 겪는다는 것으로 마지막 의지마저 상실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서른이면 청춘 중의 청춘인데,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때인 것처럼 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이 승승장구하는 것에 비해 자신은 삶에서 어떤 승리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원하면 그녀에게도 언제든 기회는 있다. 다만 그녀는 행동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무미건조한 남편 탓도, 시대적인 풍조 탓도 아니다. 권태와 공허감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서두에 한나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어렸을 때는 내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그녀가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카엘과 아들 야이르를 사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이 넘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힘으로 솟아 나올 수 있다. 그럴 때라야 그녀에게 미카엘이 어머니와 아들, 오누이의 관계가 아닌 연인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비로소 행복이 환상이 아닌 현실의 빛으로 그녀에게 비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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