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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Oct 07. 2022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

드로잉 에세이- 방 천장 스프링클러가 작동해서 놀랐던 날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일이 생기고 그 일은 사소하게 생각되지만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갑자기 아파트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그런데 내가 익숙하게 생각하던 사이렌 소리와는 조금 다른, 뭔가 회오리치는 기계음 같은 소리였다. 한참을 그렇게 세게 울려댔다.



소리만으로도 공포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해서인지,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이 멈추고 온통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방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현관문 밖에서 연기나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베란다를 통해 창밖을 한번 내다보았다. 혹시 연기 나는 창문이 없는지. 그런데 창밖을 살짝 내려다보는데도(집이 16층이어서) 어찌나 아찔하게 아래쪽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던지 얼른 문을 닫고 안전한 거실로 들어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자 소리가 차츰 작아져 옆 동으로 옮겨간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소리가 멈추었다. 화제는 아니었나 보다. 다행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이 방에서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왜? 했더니 일단 와보란다. 가봤더니, 세상에!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들이 컴퓨터를 하는 책상의 바로 위에 있는 것이었으니 아들은 앉아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었다. 재빨리 그릇 같은 것을 가져다가 받쳐놓았다. 그걸로는 어림없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이 커다란 스텐 양동이를 가져왔다. 나는 얼른 바닥에 흥건한 물을 닦아냈다.





천장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니, 2미터가량 높이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셈인데, 양동이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은 통 밖으로 튕겨나가서 계속 방바닥을 적셨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바닥을 닦는 데 사용한 수건을 통 안에 담아서 물이 수건 위로 떨어지게 해 놓았다. 그랬더니 더 이상 통 밖으로 물이 튀지는 않았다.


휴! 일단은 됐는데, 이제 어떡한담.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처음 봤다. 드라마 같은 데서 물이 쏴 하고 나오는 모습은 봤지만.

가끔씩 집이나 사무실의 천장 스프링클러들을 보면 늘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불이 나면 저기서 정말 물이 나올까?'

사고 뉴스를 보면 스프링클러가 작동을 안 해서 화제가 더 커졌다는 등의 사연이 많던데. 한 번도 화제가 난 적이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고, 과연 저 안으로 물줄기가 연결되어 있는 건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날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작동을 하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계속 통화 중이었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연결이 되었고, 얼마 후 관리실 직원이 서 임시방편으로 물이 떨어지는 스프링클러를 잠가놓고 갔다. 다음 주에 고치러 올지도 모른다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관리실 직원의 말로는 이 날 우리 동이 계단 물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물청소를 하고 나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물청소업체가 너무 요란스럽게 청소를 했거나 뭘 잘못 건드려서 이런 상황이 생긴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생긴 집은 우리 집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의문이 생겼다. 스프링클러는 연기가 나야 자동으로 작동되는 것 아니었나?

아파트가 오래됐으면 스프링클러도 오래된 것일까?

스프링클러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스프링클러는 화제가 난다고 바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고 감열체가 달려있어서 열이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야 감열체의 메탈이 녹으면서 물이 분출되는 원리였다.


우리 가족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주말을 보냈고 스프링클러에 대해서는 차츰 잊어버리게 되었다.





며칠 후 점심 무렵, 혼자 앉아서 티브이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관리실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스프링클러를 고치러 온 거였다. 한 사람은 이동용 사다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사다리를 들여와 아들 방 스프링클러 밑에 받쳐놓고, 필요한 연장들을 옆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오늘 고치는 거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바가지 같은 것을 하나 달라고 했다. 고치다가 혹시 물이 떨어질 것을 대비한 것 같았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영화를 계속 보기가 민망해서 휴대폰을 하면서 수리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직원 한 명이 출입문 밖 엘리베이터에 있는 소화전을 조작해서 스프링클러에 연결된 물을 빼내겠다는 말소리가 들렸다. 얼핏 얼핏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수도관과 연결된 호스가 스프링클러 작동 시 수도꼭지를 틀 듯이 물을 계속 내보내 주는 게 아니고 일정 양의 물을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통에 담아놓는 것 같았다. 이들은 수리를 위해 그 물을 빼고 스프링클러의 밸브를 교체하고 물을 다시 집어넣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작업은 한참 걸렸다. 다른 집들도 고치고 있는지 한 두 명은 이 집 저 집 왔다 갔다 했다.


작업자들은 중간에 베란다 쪽에 무슨 설비가 있는지 확인한다고 베란다로 두 사람이 나갔다 왔다. 이들은 슬리퍼가 있는데도 맨발로 나가서 난 그것이 또 신경이 쓰였다. 베란다 바닥 더러운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곳이 여의치 않았는지 이번에는 안방 화장실을 확인하더니 여기 적당한 게 있다면서 다른 사람을 불러서 또 뭘 조작하는 것 같았다. 거실 화장실의 물을 내리는 소리도 났다. 집안을 깔끔하게 쓰지 않는 나로서는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낯선 사람들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참는 수밖에.      


난데없는 스프링클러 물 떨어짐 사태로 일어난 해프닝은 이들이 다 되었다며 사다리를 들고 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혹시 다시 물이 떨어지거든 얼른 연락해달라고 하면서 세 사람은 집을 떠났다. 나는 그들이 나갈 때까지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는 건 그들이 주는 도움에도 불구하고 참 거북하다. 특히 남성들. 무슨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관리실 직원을 부를 때는 웬만하면 남편이 있을 때 부른다.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비상상황에서는 큰 힘이 되어줄 스프링클러.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다행인 것일까?

이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 절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너무 안 써서 스프링클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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