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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Oct 15. 2022

 판구 씨의 고향 방문기-야생의 체험

드로잉 에세이


고향집 뒤뜰의 모습


아내의 고향집이 판구 씨의 고향집이 된 사연


판구 씨얼마 전 주말을 끼고 고향집에 다녀왔다.

엄밀히 말하면 아내의 고향집이다. 아내를 포함하여 형제가 여섯이 있지만 아무도 그 을씨년스러운 집에 가볼 생각을 안 해서 방치돼 있던 집이었다. 판구 씨가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봄부터였다. 아내와 결혼 때부터 그는 아내의 친정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따지고 보면 허름하고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집이었는데도 무조건 그 시골집이 좋았다. 아내가 물려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집은 아내의 오빠인 큰아들이 물려받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홀로 된 장모님이 혼자 지내던 곳이었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장모님은 큰아들의 집을 거쳐서 병원신세를 지다가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 후 시골집은 어쩌다 한 번씩 큰아들이 무성한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러 다던가, 장인어른의 묘가 있는 집 근처 밭뙈기를 보러 때를 제외하고는 돌보는 이 없이 버려졌다.


판구 씨는 그 시골집에 내려가 지내고 싶었다. 아내도 처가의 형제들도 낡고 후미진 곳에 뭣하러 가려하느냐, 고쳐서 살만한 곳이 못된다며 말렸다. 그가 시골집을 원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는 캠핑에 맛을 들여 캠핑을 다니고 있었다. 만일 시골집을 캠핑장 삼아 지낸다면 돈도 절약하고 훨씬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3년쯤 전, 아내의 고향집 근처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던 날 드디어 그는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시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고향집 대문 앞에 섰고 대문 옆 우체통에 들어있던 열쇠를 이용해 대문을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녹슨 탓인지 도무지 대문을 열 수가 없어 들어가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시골집에 입성을 하였다. 그는 차차 집안을 정리하고 부엌을 정돈하고, 허름할지언정 한 번씩 가서 지낼 만은 하게 집을 고쳐놓았다. 아내는 돈을 좀 들여서 산뜻하게 고치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조금씩 고쳐나가면 될 일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집도 아니니, 스스로 치우고 다듬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도시에 살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고향집을 오며 가며 지내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모님이 사위가 시골집을 이렇게 제집 삼아 드나드는 걸 알았더라면 마뜩잖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사위라니.^^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와 아내의 형제들은 지금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 덕분에 고향집에서 며칠씩 보내는 기쁨이 생겼고, 아내의 형제들은 고향집이 잊히지 않고 잘 보전되는 것을 좋게 보았다.  빈집은 폐가가 되기 십상인데 덕분에 고향집이 폐가가 되는 지경은 한 셈이다.

아내의 고향집은 이제  그의 고향집이 되었고, 가끔씩 고향집을 가는 아내는 오히려 손님이 다녀가듯 머물다 가곤 다. 소설 <달과 6펜스>를 보면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곳이 아닌 본향이 따로 있어서 그곳을 가면 자신이 찾던 곳임을 깨닫고 그곳에 머물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생긴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아내의 고향집이 바로 그런 곳이었던 셈이다. 언젠가 그는 아내에게

"나는 그 집에서 생을 살다 죽으면 여한이 없어. 퇴직하면 가까운 도시에 집 하나 두고 두 집을 오며 가며 사는 게 내 꿈이야."

      



고향집의 터줏대감-고양이들


그가 처음 시골집에 지내러 갔을 때 발견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장모님이 사실 적 있던 고양이들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양이였다. 그다음 해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나 있었고, 지금은 또 한 마리가 늘어 세 마리의 고양이가 갈 때마다 그를 반겨주었다. 그는 고양이들에게 이름도 지어줬는데, 엄마 고양이는 에미야! 하고 부르다가 조금 더 예쁜 이름인 에이미가 되었고, 에이미의 첫째 딸인 곱상하게 생긴 노란 고양이는 한참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던 그가 오드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작년에 태어난 에이미의 둘째 딸은 조금 평범한 삼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졸리는 고양이들, 왼쪽부터 에이미, 삼색이, 뒤쪽이 오드리


그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양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홀로 시골집에서 여러 날 머물 때면 고양이가 적적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특히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양이들이 그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먹을 것을 달라고 가끔씩 보채기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제 할 일들을 하며 여유롭게 보내는 모습이어서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한 번씩 갈 때마다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허전하고 어디 있는지 찾게 되었다.


판구 씨는 도시에 와서 지낼 때 고기나 생선 찌꺼기가 생기면 시골집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녀석들 주면 좋아라 먹었을 텐데."

에이미가 새끼를 낳았을 때는 새끼를 낳은 에이미를 몸보신시켜주고 싶어 했다. 마치 산후조리하듯이. 남편의 달라진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아내는 놀라워했다. 평소에 남편이 냉정하고 무심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사실은 남편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까서 기를 때도 무척 뿌듯하게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오드리가 제비 새끼를 한 마리 사냥했을 때는 오드리를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다.

이때도 아내는 '혹시 남편이 동물 애호가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기도 했다.


고양이들은 가 갈 때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며 그를 쓸쓸하지 않게 해 주었다. 보답으로 그는 삼계탕을 끓여먹으면 절반은 고양이에게 주었고, 삼겹살이나 다른 고기들도 남는 대로 고양이에게 주었다. 다만 고향집을 떠날 때는 고양이가 먹든지 말든지 남은 먹거리들을 다 섞어서 고기 국물에 말아 담아놓고 오곤 했다.


          



가을의 초입에 고향집에 가다


판구 씨는 고향집에 갈 때마다 마음이 들뜬다. 이번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여름에 갔을 때, 잘 되지도 않는 예초기를 겨우 고쳐서 숲처럼 자란 풀을 한바탕 잘라냈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자른 풀대의 옆 잔줄기들이 다시 쑥 자라 있었다. 그나마 계절의 위력에 기가 죽은 듯 대부분의 풀들이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마당은 새로운 풀이 두루 점령했다. 보라색 꽃을 피우는 들콩 덩굴이 지지대만 남아 있는 비닐하우스 자리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들콩에는 까만 작은 열매들이 많이 달려 있었는데 참새들의 식량이 되었다. 호박 넝쿨도 마당과 담자락을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늙은 호박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차를 가져오지 않아서 집으로 데려가기 힘든 형편이어서 아쉬웠다. 아직 덜 자란 초록색 둥근 호박은 잘게 잘라 라면 끓일 때 넣어먹었다.



고양이는 오드리만이 나타나서 그를 반겨 주었다.(고양이들이 가장 반기는 이유는 그가 올 때마다 맛있는 것을 잔뜩 주기 때문)  그는 이곳저곳 둘러본 뒤 집 안으로 들어가서 방과 부엌이 이상 없는지 살펴보았다. 잠자리도 미리 봐 둘 겸 벽장의 이불도 살펴보았는데, 늦여름께 비가 자주 온 탓인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중 상태가 좋아 보이는 것들을 꺼내 펼쳐놓았다.

그다음에는 늘 하듯이 마루와 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크게 켜놓았다. 이동식 작은 라디오도 있어서 뒤뜰에 갈 때는 가지고 다니면서 들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멀리 있던 고양이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그를 만나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르겠다. 에이미와 삼색이가 얼마 후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으로 나와 보니 석양이 서산 너머로 지며 붉게 물든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먹을 것은 언제 줄까 목이 빠져라 그만 주시하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부어주었다.(그릇 세 개에 로따로) 사료를 줄 때마다 사료가 들어있는 통을 흔들어 버릇해서 그가 사료통을 흔드는 소리가 나면 고양이들은 쏜살같이 달려왔다. 통을 아무리 흔들어도 고양이가 나오지 않을 때는 집 밖으로 아주 멀리 마실을 나갔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동물과의 조우


날이 저물자 잠잘 준비를 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티브이를 켜고 누우려는데, 이때 그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생명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서랍장 한쪽 귀퉁이에서 난데없이 생쥐 한 마리가 몸을 쏙 드러낸 것이다. 그는 너무 놀라 멈칫했고, 놀라기는 생쥐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조그만 생쥐의 까만 들콩 같은 눈을 잠시 응시하였는데, 너무 놀라서 당장은 무얼 하려는 생각을 못하고 말았다. 생쥐는 생쥐대로 사람이 안 사는 빈집이라고 생각하고 살려고 들어왔는데 느닷없이 왠 어수룩하게 생긴 아저씨가 큰소리를 만들어내며 움직거리는 모습을 보고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 것 같았다. 적인지 아닌지 헷갈린 것일까? 생쥐는 곧 장롱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남자는 너무 놀라서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쥐가 나타났다고, 어떻게 쥐가 있는지…" 통화를 하면서 마음을 좀 가라앉혔다. 그는 상상을 더해 "음악 듣고 나왔나 봐. 라따뚜이 생각나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통화를 하고 있는데 생쥐가 다시 얼굴을 내밀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생쥐가 버젓이 있는 공간에서 맘 편히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는 일단 생쥐가 드나드는 구멍을 찾아서 막기로 했다. 생쥐가 들어오지 못하게.

장롱 한쪽을 잡아당겨서 벽과 장롱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살펴보니 생쥐가 드나든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보였다. 그곳을 비닐 같은 것을 뭉쳐서 막아버렸다. '이젠 안 들어오겠지.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그때 생쥐가 천장 구석에서 쪼르르 벽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천장 쪽에도 구멍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려온 생쥐는 바닥 쪽 구멍으로 들어가려다가 비닐로 막혀있어서 들어갈 수 없자 어찌할 줄 모르고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이때를 놓칠세라 그는 청소용 밀대의 손잡이 끝으로 생쥐의 목 부분을 꾸욱! 하고 눌렀다. 아주 잠깐 사이에 생쥐는 질식사하고 말았다. 살아있을 때는 벽도 타고 다닐 만큼 날렵하고 활기가 있던 생쥐는 그렇게 힘없이 죽고 말았다. 허망한 죽음이었지만 그는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생쥐와 공존할 수는 없었다. 죽은 생쥐를 대충 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베개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어수선한 첫날밤이 지나갔다. 고향집에 오면 없던 에너지도 솟아오르는 판구 씨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이곳저곳 손 볼 만한 곳을 찾아서 정리할 곳은 정리하고 버릴 것은 모으고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생쥐가 더 있을지 모르니 안방 옆에 있는 윗방을 살펴보기로 했다.

어미 생쥐가 만든 더미가 파헤쳐진 모습

윗방을 살피자 수상한 종이 더미가 보였다. 바닥 한쪽 구석에 벽지와 신문지를 잘게 잘라서 만든 종이들이 무덤처럼 둥글고 높게 싸여 있었다. 생쥐의 작품인 듯 갉아서 만든 조각들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양과 크기가 거의 비슷했다. 발로 종이 더미를 헤쳐보았다. 그랬더니, 윽! 그는 한번 더 식겁했다. 거기에는 아직 눈도 못 뜬 채 꿈틀거리는 생쥐 새끼 두 마리가 서로 겹쳐진 채 들어있었다. 생쥐는 어린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게 종이조각 더미를 만들어 그 속에다 낳고 젖을 먹여 기를 심산이었던 것 같았다.


어미가 이미 죽은 지금 살아날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살릴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생쥐 새끼들을 종이 더미와 함께 한데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고양이에게 먹이로 줄까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징그러울 것 같았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고양이들은 심하게 굶주리지 않는 이상 이런 날것의 생물들에게 먹거리로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사냥 본능 때문에 가만 놔두지는 않지만.

이렇게 해서 생쥐 가족과 동거한 일박 이 일은 막을 내렸다.


판구 씨는 뒤뜰과 감나무가 있는 곳들을 둘러보았다. 감나무에는 단감이 제법 많이 열려 있었는데 대부분이 벌레 먹거나 썩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단감은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고 있었다. 오히려 이웃집에 있는 감나무들은 키가 작아도 싱싱한 대봉시들이 잔뜩 열려있어서 따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남의 대봉시까지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단 하나 열린 대추, 확대하니 모과 같음^^


작년 봄에 심었던 과일나무들도 살펴보았다.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딱 하나 열렸다. 더 작았던 작년에는 그래도 서너 개 열렸었는데, 한 개밖에 안 열리다니 서운했다. 사과나무는 여전히 긴 가지들만 치렁치렁 키웠지 꽃도 피지 않았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마당의 담장 옆에 심었던 아내가 좋아하던 두 그루의 블루베리 나무도 자리를 잘 잡긴 했지만 열매를 보기는 아직 먼 것처럼 올해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 키도 많이 자라지 않아서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고양이들이 장독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장독대의 큰 항아리 중 하나는 뚜껑이 덮여있지 않았다. 올봄 얼음이 녹을 때쯤 개구리 두 마리가 그 안에서 얼어 죽은 모습을 발견했었다. 마치 덫처럼 그 안에 들어가는 생물들은 날지 못하는 경우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번에도 뭐가 빠져 있나 궁금해서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최근에 비가 자주 와서 물이 제법 차 있었다.


항아리 속을 들여다본 모습


그는 항아리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또 하나 발견했다. 이번에는 죽은 생명체였는데, 바로 꽃뱀이었다. 세상에! 뱀이 있다니! 몇 년째 다니면서도 뱀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아마 뱀이 들어오고 싶어도 고양이 때문에 들어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꽃뱀은 어떤 이유에서든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크기는 크지 않았으나 꽃뱀답게 등가죽의 무늬가 제법 정교하고 예뻤다. 청개구리도 한 마리 죽어서 둥둥 떠다니는 것으로 보아 꽃뱀이 청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따라 들어갔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보았다. 나뭇가지로 꽃뱀을 집어 들어서 꺼냈다.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전송해주었더니 아내도 몹시 놀란 듯했다. 도대체 이 작은 집과 뜰에 뱀까지 살고 있다니! 야생이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는 걸 보면 건강한 대지라는 의견을 서로 나누었다. 어쩌면 집 주변에 있는 밭들이 자꾸 농약을 뿌려대니 상대적으로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이 집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생쥐 가족에 꽃뱀까지. 고양이 녀석들은 뭘 하느라 생쥐와 뱀이 활개 치게 내버려 뒀을까.  밥값도 못하는 녀석들이 아닌가, 그는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기들의 활약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고양이들은 쥐 두 마리를 잡아서 먹지는 않고 토방 위에 버려놓았다. 엄마 고양이 에이미는 개구리를 잡아먹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먹으려면 다 먹을 것이지 맛이 없었던지 절반만 먹고 다리 쪽은 버려놓아서 그는 개구리의 징그러운 사체를 발견하고 말았다.


고향집에 있는 동안 판구 씨는 집 안과 근처 들판을 즐기다가 도시의 집으로 돌아갔다. 고양이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라면 국물에 곰팡이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던 나초를 집어넣어 죽처럼 만들어서 주고 왔다. 과연 고양이들이 나초를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약을 좀 뿌려야 할까 봐. 풀의 위세를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는 걸.”

그의 아내는

“누가 뭐래도 당신은 절대 약을 뿌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벌써 잡초한테 무릎을 꿇은 거야? 좀 더 참아봐.” 하고 핀잔을 주었다.      


판구 씨는 틈나는 대로 어떻게 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 잡초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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