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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13. 2023

그리운 이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이李씨(이하 이): 지난 6월, 어느 날 수업이 없는 5교시에 휴대전화가 울렸어. 학부모님 전화였어.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 울먹이는 목소리가


 '선생님, 지금 00이 집으로 보내주세요. 00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문장을 어렵게 마치고서는 흐느끼는 울음이 이어졌어.


점선면(이하 점): 아이코, 수업 중인 학생에게 그 소식을 전해줘야 했겠네.


: 마침 특별실 수업이어서 수업 중인 교실로 찾아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아이를 불러내었지. 지금 바로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오면서 '왜요?'라고 물어.


근데, 전화 너머로 들리던 울음이 나에게도 옮겨와 있어서, 내 목소리도 떨리고 울먹이고 있는 거야.


'00아, 엄마가 전화하셨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대.'


가까스로 짧은 문장을 말하고, 내가 훌쩍이고 있는데, 오히려 아이 표정이 오히려 담담해졌어.

중학년 2학년 무뚝뚝한 남자아이의 표정으로.


: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수업하다 갑자기 집에 가야 한다는 말보다 덜 갑작스러운 건가?


: 학생이나 학부모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가끔 보게 되는데, 00이 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본 적이 있어.

환자복을 입은 친정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었어. 보면서, 친정 엄마가 많이 아프시구나 생각하고 있었지.


아이 휴대폰을 꺼내주고, 조퇴증을 써주면서 물었어.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어?'

'암이에요.'

'아...!'


아이가 교무실을 나간 뒤, 전화 너머로 들리던 울음이 이어져 들려, 나도 같이 울었어.


2022년 3월부터 6월, 어머니와 나를 떠올렸지.

노쇠해지는 친정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한 걸음, 한 걸음을 봐야 했던 그때. 그 마음, 그 눈물, 기도도.

엄마를 잃은 세상의 딸들 중 하나가 되어 그 상실감과 그리움을 통과해야 했던 때.


그러다가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알고 살았으니, 괜찮은 거였다고 알려주는 책을 읽었지.


: 그 책의 주인공은 엄마를 알지도 못했다는 건가?


: 주인공이 너무 어릴 때 세상을 떠나서 그러니까 자신과 쌍둥이 남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신 거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거야.


소설의 화자는 열두 살 소녀 니샤.


마음 한 편으로는 자신의 생일이 엄마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아빠의 사랑에도 확신이 없어. 왜냐, 아빠에게 제일 큰 상실감을 초래했다는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지.


: 한창, 엄마가 그리우면서도, 그 마음조차 누군가에게 담백하게 말하기 어려웠겠구나. 쯧.


: 그래서, 니샤는 일기장에다가 엄마를 향해 편지를 쓰기 시작해.


그리고 그 편지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기록이자, 인도의 독립 후 벌어진 인도-파키스탄의 분리에 대한 기록이 돼.


: 아, 열두 살 니샤가 인도 역사의 한 시점을 지나면서 관찰자가 되는구나.


: 그냥, 관찰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피난행렬에 올라, 그 당시의 험난한 힌두-이슬람교도 사이의 분쟁과 인도-파키스탄의 국경분쟁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돼.


니샤의 엄마는 이슬람교도, 아빠는 힌두교도인데,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이 진행되면서 아빠는 힌두교도들의 나라-인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거든. 그렇지 않으면 종교분쟁 때문에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라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에게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


: 그럼, 니샤와 쌍둥이 남동생, 아빠 이렇게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인도지역으로 돌아가는 거였어?


: 니샤의 연로한 할머니까지 함께 이동을 하자니, 더 힘들었지. 읽다 보면, 한 나라였는데, 독립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닮았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인도-파키스탄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가 분단의 원인인데, 어린 소녀에게는 이게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폭력인 거야.


권력을 잡은 이들이 내린 결정에,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고, 죽음과 분쟁으로 내몰리는 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안타까워. 더군다나, 니샤와 아밀처럼 세상을 배워가는 어린이들에게는.


: 니샤는 그래도 씩씩하게 이 역경들을 헤쳐나가겠지?


: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소녀라서, 자기 마음을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않아. 그래서, 더 엄마에게 쓰는 편지, 일기에 마음을 쏟았고.


친구를 갖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던 일은 오히려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된 사건을 겪으면서 더 자기 마음속으로 깊이 웅크리게 되지.


하지만, 니샤는 피난길에 잠시 들린 외삼촌집에서, 자신의 엄마가 자기와 쌍둥이 남동생을 사랑했다는 외삼촌의 증언을 듣게 되면서,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놓여나.


이것이 니샤로 하여금 남은 피난의 길과 낯선 곳에서 살아갈 힘이 되어주지.


사람은, 사랑... 사랑으로 살아가는 게 맞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한번 보고 싶어도, 만지고 싶어도,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어느 하나 허락되지 않는 엄마의 존재이지만, 그 엄마가 자기를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환해지고, 마음에 힘을 얻을 수 있으니.


: 니샤의 이야기가 이 씨에게도 위로가 되었어?


: 위로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지 않았으면, 니샤처럼 엄마를 기억할 수도 없이, 그저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때로는 내가 겪는 감정의 격량에 휩쓸려갈 때, 더 큰 파도를 헤쳐 나온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빠져나올 힘과 지혜를 준다고 생각해.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더 불행한가, 행복한가를 논할게 아니라. 그저 우리는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데, 서로의 이야기로 배움을 얻는 거지.


니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어머니와, 딸, 세상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에서 더 소중한 존재로 딸을 대하고, 딸에게도 더 좋은 엄마가 되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네.


그리고,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마음에 위로가 있기를 기원하고요.


: 그래, 부치지 못할 편지는 그리운 이에게 쓰는 것이면서, 자신에게 쓰는 이야기일 테니까.


글쓰기가 펜을 잡은 당신을 치유할 수 있기를!

THE NIGHT DIARY(PUFFIN BOOKS)/밤의 일기(다산기획)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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