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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26. 2023

자녀

나로부터 오지 않는 존재

지인 중에 셋째를 출산하고 나서, 넷째를 갖고 싶어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번에는 어떤 애가 나올까?'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랍니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들인데, 면면을 보면 참 신기할 정도로 닮기도 했지만, 다르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반은 엄마, 반은 아빠여야 하는데, 외모부터 성격까지 제 각각입니다.


중고등학교 생물시간 덕분에 인간의 생식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보편화되었고, 아이의 탄생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확률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잠시잠깐 찰나의 순간, 어느 정자로 어떤 난자와 만나 수정란이 되느냐에 따라서,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자녀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놀랍지 않나요?


그걸 생각하면, 오늘날 내 곁에 있는 내 자식의 존재는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성별도, 외모도, 특질도, 기질도 다른 미지의 어떤 존재로 내 아이가 대체된다고 해 봅시다.

현생에 지금 내 옆에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에 와서, 우리는 부모-자식의 관계로 만나게 된 것인지, 그 인연이 기가 막힙니다.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는 아이가 나에게 왔습니다.

선택할 수 없었기에 주어진 생명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나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는 내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낳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내가 그를 빚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생명과학이 발전했다지만, 혈액을 대용할 물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정자, 난자를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지만, 정작 정자도 난자도 과학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내 자녀는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지만, 하나님의 보냄으로 태어났다 말할 수밖에요.


이러한 전제는 부모-자녀 간의 인식의 틀에도 영향을 줍니다.

자녀를 나의 소유물로 여길 수 없게 됩니다.

왜냐면, 자녀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 땅에 온 개별적인 영혼이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잠시잠깐 부모-자녀라는 관계로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요.

자녀는 어렸을 때는 부모의 전적인 손길이 필요하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부모와는 동반자가 되는 겁니다.


가족들에게 제가 진담반, 농담반 '사랑합니다, 고객님'하고 가끔 말을 겁니다.

배우자는 반편생의 고객님이고, 자녀들은 평생의 고객님이죠.


무수한 잠재고객 중에서 오늘 내 집에 내 곁에 이렇게 있는 그 고객님은 창조주의 특별한 뜻이 있기에

실재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무슨 근거로 아이에게 '너는 특별하다', '소중하다'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특별함이 자신의 특별한 조건이나 가족의 배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에 있음을 인정해야 타인의 존재, 이것 역시 조건이나 배경을 떠나 존재 자체로 특별하며 소중한 것으로 대하는 근거가 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여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출산과 육아라는 험난한 과정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생애주기 가운데, 이 시간이 지정된 것은 (종족의 번식을 위한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쳐도. 그럼 그 호몬 시계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부모 된 자들의 성장을 위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된 것은  아이의 온 세상이 되는 책임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는  자기 힘으로 자전거를 타도록 내 손에서 자전거를 놓고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놓아 보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양육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안락함과 추구하는 것들을 잠시 접어두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잘 성장한 자녀들과 누리는 특별한 유대감은 그 시간들을 상쇄하고 남을 행복을 선사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보내주신 생명이자 존재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자녀입니다.


본연의 원저작권자님은 하늘아버지시니, 그분이 부여한 고유성(originality )을 믿어야겠습니다.

하늘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위대하고 좋은 분이시니, 그분이 인도하고 돌보시기를 기도드려야겠습니다.

잘 키울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드려야겠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형의 주조틀에 자녀를 맞추려고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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