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Mar 20. 2023

미래에서 전해진 조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22. 3. 8.(화)

코로나 시국의 간병은 참 얄궂다. 일단, 환자에게 단 한 명의 간병인만 가능하고, 간병인은 코로나백신 3차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한번 간병을 담당한 사람은 8시간 이내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없다. 우리 삼 남매가 같이 병원으로 간다 해도 일반병실에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어머니를 오늘 오후 일반병실로 옮긴다는 병원 연락을 받고 삼 남매가 간병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상의 끝에 오늘부터 내일아침까지는 오빠가, 내일 아침 오빠에 이어서 언니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리고 언니가 나오면 오빠가 들어가는 걸로 정했다.


나는 오빠가 며칠간 간병을 하고 나서 교체가 필요하다는 시점에 들어가는 걸로 했다. 나는 어제까지 백신 3차 미접종자였고, 오늘 간병을 위해서 아침 읍내에서 백신접종을 했다. 내가 당장 간병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 간병인 자격에 3차 접종 후 14일 경과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고 감사한 것이 2022년 내가 휴직자 신분이다.


오빠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대체 간병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밭에 수확해야 하는 채소들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오빠에게 큰 소리를 쳤다. 하나님이 솟아날 구멍을 마련하고 하늘을 무너뜨려주셨나 싶었다.


그리고  저녁부터 간병하러 들어간 오빠의 카톡 메시지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 상태, 첫 간병에서 오는 당황스러운 감정들, 이런저런 간병인들이 처리해야 할 일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 오늘 준비 못했던 물건들 중에서 내일 만날 때 챙겨 와야 할 것들, 간호사들한테 서운한 점...... 오빠에게 일어난 일상의 지각변동. 충격이 클 것은 이해가 되지만, 예민하고 완벽하려는 성격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오빠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사이, 우리 자매는 각자 마음 돌릴 곳을 찾았다. 언니는 집에 있기 답답하다면서 차 타고 외출했다. 나는 어머니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밤 12시,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밤은 깊고, 문풍지 창문 너머로 바람소리도 들려오고, 방 공기는 싸늘했지만, 내 마음에는 달콤하고 말랑한 꽃 냄새를 품은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런 맛깔난 소설이라니! 나미야잡화점이 타임머신이 되어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공간이 된다는 기발한 상상! 어설픈 좀도둑 친구무리가 잡화점 구석에 앉아 써 보내준 편지 덕분에 과거 시점에서 살고 있던 다른 등장인물들은 고민의 해답을 얻게 된다. 하늘이 내린 계시처럼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필요했던 인생의 절대 변곡점을 만들어준 거다.


도둑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 안에 담겨있던 인간애 덕분에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있는 환광원.  마지막 환광원의 이야기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딱 맞춰지면서 비로소 커다란 그림이 보인다. 그 시작도 사랑과 미안함, 그리움, 그 마지막도 사랑과 그리움이었다. 내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전해졌다. 환광원 이름에 있는 광(빛)이 마음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처럼 미래의 시점에 있는 누군가가 지금 현재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들려준다면?


수많은 선택의 지점지점마다, 나의 선택을 자신할 수 없을 때 감정은 더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버려진 다른 선택이 혹시 더 좋은 것이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이 공격한다.


바로 어제,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수술을 원치 않았다. 혹시 수술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던 거라면? 정신 차리자, 이런 미련이 쌓여갈수록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힘만 약해질 뿐이다.





이전 14화 빈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