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누구를 바라보고 사랑하며 대화하는가?
40세가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
50대에 들어선 어느 날 지인들과 만나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설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 생각났습니다. 어렸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아이러니에 꽤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났지요.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저자의 단편집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책 뒤편에 해설을 살펴보니, 그 소설이 주는 교훈 덕분에 우리나라 교과서에 무려 45년이나 글이 실렸다는 겁니다! 45년! 아쉽게도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이라는 자세한 설명은 달려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성인들 다수가 학창 시절에 한 번은 읽었다는 추측은 가능하겠죠?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불현듯 그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가 있습니다. 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이 전부 이제 50대 중반, 60대 초반을 지나는 나보다 연상인 분들이라 후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관찰을 하게 되었거든요.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듣는 방식, 얼굴의 표정, 말투, 몸의 자세, 말의 내용. 같은 공간에 대화의 상대로 앉아 있기 때문에 저절로 이뤄지는 반응인 셈인데, 솔직히 만족스럽고 유쾌하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이 먹음이 성장을 뜻하고, 성장은 곧 성숙과도 연결되니까 나이 먹은 만큼 성숙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라는 지칭이 맘에 안 들면 죄송, 적어도 저는 나이에 따른 성숙함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반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참 많이 실망스럽죠. 그렇게 실망과 씁쓸함,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 길에 ‘큰 바위 얼굴’을 생각했던 겁니다.
주인공 어니스트Ernest는 큰 바위 얼굴-산줄기 가운데 자연이 만들어놓은 사람 얼굴을 닮은 암벽 덩어리-이 장엄하고도 인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그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언젠가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이 마을로 돌아올 거라는 예언과 같은 이야기를 믿으며 그런 존재를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큰돈을 모았던 개더골드 Gather Gold, 전쟁터에서 용맹스러웠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Old Blood And Thunder, 탁월한 정치가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세 사람이 세월의 간격을 두고 큰 바위 얼굴의 현현으로 불리며 동네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어니스트Ernest는 누구보다 큰 바위 얼굴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셋이 전부 자격미달의 사람들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봅니다.
세월이 흐르고 어니스트가 백발의 노인이 되었을 때 어느 날 한 시인이 마을에 도착하고,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어니스트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고 있을 때, 시인은 어니스트야 말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사람들에게 외쳐 알립니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 말에 동요하지 않고 언젠가 자신보다 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올 거라 바라며 집으로 돌아가지요.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잘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간단한 요약에는 빠져있는 어니스트만의 독특한 행동, 어쩌면 의식이라 할 만한 행위가 있는데. 그건 그가 큰 바위 얼굴을 매일 같이 바라봤다는 겁니다. 마치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몇 시간이고 생각이 잠겼지요.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 장년기까지 큰 바위 얼굴이 직접 그의 스승이 되어준 거였어요.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보면서 인생의 미덕을 배우기도 했지만, 자신을 향한 큰 바위 얼굴을 흔들리지 않는 사랑, 신뢰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요? 제가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은, 인생의 스승이자 사랑을 베푸신 구원자이기에 경배의 대상 되신 예수님입니다. 성경 속에 그려진 예수님은 오늘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받는 기독교의 성직자들과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진실로 그분의 마음에 닿은 길을 붙들고 살고 싶네요.
당신에게 가르침과 사랑을 베풀어 주길 바라며 바라보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려하는 큰 바위 얼굴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시간을 내어 바라보고 묵상하는 그 대상의 속성을 천천히 닮아가게 된다는 걸 인정한다면, 누구를 바라볼지 결정한 것이, 결국 우리 노년의 모습을 결정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