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줄 : 가옥이나 건물을 지을 때 수평이나 수직 연부를 가늠하는 데 사용하는 추 달린 줄. 줄에 납이나 돌로 된 원뿔 모양의 추를 매달아 사용했다. (출처_라이프 성경사전)
조율: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름. (출처_표준국어대사전)
다림줄이라는 말을 성경 속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에 반했습니다. 대학교시절, '포스트모더니즘'도 만났습니다. 한창 핫한 이슈이자 이념이어서 책을 몇 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입학한 해에 기독교에 입문했기 때문에 기독교와 포스트모더니즘, 두 개의 가치체계가 전부 새로웠습니다.
하나는 '절대진리가 존재한다'라고, 또 다른 하나는 '절대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저는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의 다림줄'이 훨씬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헛헛한 마음에, 마음을 쏟을 곳이 필요해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7월 16일, 나의 사랑하는 반려악기 우쿨렐레 '퐁이'를 입양했습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어 그해 10월부터는 아들이 치던 기타도 제 걸로 입양해서 '라떼'라 이름 붙이고 같이 놀고 있는 중입니다.
현악기의 특성상, 연주를 하기 전에 섬세하게 조율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한동안은 귀찮아서 조율을 건너뛰었습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막귀인 제 귀에도 뭔가 시원치 않고,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치던 악기를 내려놓고, 다시 휴대폰에서 조율앱을 열어서 음을 맞추고 나서는 소리가 아름다워지는 것을 몇 번 경험했습니다. 귀찮다고 건너뛸 일이 아니더군요.
'기준'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것을 판별, 판단할 때, 결정할 때의 기준.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00에 따라서, 00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면 기준이라 할 수 없겠지요.
기준 없는 삶은 자유롭고 충만할 삶일까요?
기준선을 잃는 삶은 마치 조율되지 않고 제멋대로 풀린 현들이 울려대는 소리와도 같다면, 제가 너무 억지일까요?
제 고집대로 하나님의 다림줄에 대고 보면 삐죽 대게 멋대로 인생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시기, 해방감보다는 불안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림줄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그렇게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생에 진정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좋았습니다.
그 덕분에 여태껏 살아온 것 같습니다.
믿고 따를 진리,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무엇을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할지 허무와 혼돈의 세계이지 않을까 합니다.
나름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지켜오는 기준, 추구하시는 진리, 인생의 만족을 얻는 기준과 가치들이 있으시겠죠.
저의 브런치이니, 솔직한 생각을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배. 창조주이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없다면, 저는 마치 조율되지 못한 악기처럼 살아갈 것 같습니다.
삶에서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과 의심, 불안, 두려움, 걱정, 인생의 독과 같은 것들을 어디서 해결 받겠나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 시간은 제게 해독의 시간이기에 꼭 필요합니다.
조율의 시간,
원래 만들어진 대로 최상의 연주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부모, 교사, 어른이라는 역할뿐 아니라, 제 존재를 지켜나가는 일관성, 안정감의 원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