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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20. 2023

달음질이

소년을 구원하리라

"When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거든,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요.


이李씨(이하 이): 이전에 책 '배움의 발견'을 리뷰하면서 인용했던 말인데, 이 책을 쓰려고 하니, 다시 떠올랐어.


점선면(이하 점): 흣. 오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어떤 인생의 레몬을 선물 받았길래?


: 어렸을 때, 부모님이 차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거. 삼촌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삼촌과 숙모는 매일같이 싸우기만 해서,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해 그 집을 뛰쳐나온 거.


결국,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투 밀즈 Two Mills라는 타운의 이쪽 이스트엔드East End와 웨스트 엔드 West End를 오가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로 살게 되는 거.


: 소년 노숙자!


: 어느 한 곳 오래 머무르기를 두려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부모님의 죽음과 삼촌집에서의 불운을 경험하면서 자기는 자신과 머무는 사람들에게 나쁜 운 bad luck을 가져다주는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는 게 두렵기도 했던 거지. 이 가련한 소년의 본명은 Jeffrey Magee. 어느 날 투 밀즈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이었지만, 마을의 양아치 마스 바 Mars Bars와 한판 뜨면서 미치광이 Maniac(매니악)이라는 별명을 얻고, 그 이후 남들은 생각지도 못할 기행으로 지역의 전설이 되지.


물론 그 과정에서 제프리는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 공격을 받아야 했는데, 더불어 때에 맞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해.


: 마스 바와의 결전. 그리고 남들을 하지 못할 기행을 소개해 줄래?


: 제프리는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운동신경이야. 달리기로 마스 바를 제압해 버렸지. 야구에도 눈부신 재주를 뽐내서, 제프리를 견제하던  존 맥냅 John McNab의 삼진아웃 시도를 무산시키면서 그에게 큰 분노를 선물해 주었어. 거기다 아무리 어려운 매듭도 풀어내는 천재적인 감각을 가졌지. 제프리가 전설이 된 데는 그것도 큰 몫을 하지.


그리고, 제프리의 기행에 대해서는 이 소설의 배경이 미국이라는 것, 이 소설이 1990년대에 출판되었다는 걸 기억하고, 생각해 보자.


제프리는 그 시대, 그 지역의 불문율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사람들의 종잡을 수 없는 추측과 의심 속에서 EastEnd와 WestEnd를 자유롭게 오고 갔어.

백인이 Jeffrey가 절대 환영받지 못하는 곳, EastEnd. 그곳은 바로 흑인들의 거주지였던 거지.

보이지 않는 유리벽. 완벽한 분리. 그 경계를 제프리는 공기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럽고 빠르게 오갔던 거였어.

심지어, 그곳 흑인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싸움을 하고, 친구가 되고, 도움을 주고, 집에 얹혀살기도 하면서.


: 제프리는 사회규범 Norm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었네. 하지만, 아직도 나이 어린 소년인데, 가족과 사랑이 필요한 거 아닌가? 늘 푸르고 꿋꿋하기만 할 수 있겠어?


: 가슴이 따뜻해지면서도 아파오는 부분이 그거야. 그레이슨 Grayson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제프리도 어른의 보살핌 속에서 뿌리내리는 가 싶었어. 제프리의 어려운 처지를 눈치채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 머물도록 그레이슨은 먼저 손 내밀어 주었고, 제프리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레이슨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주지. 서로를 아끼고 돌보고, 둘이 좋아하는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행복하던 두 사람. 다른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둘이 있어서 행복하고 따스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바로 그다음 날 아침 그레이슨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두 사람의 이별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잖아. (작가님이 너무 했어!)


역시나, 자신에게 불운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자기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부정의 확증편향을 또 경험하지. 가엾은 제프리.


: 달리는 소년, 매니악 매기에게 가족이란 영영 닿을 수 없는 별 같은 건가? 결국 혼자 떠돌이로 살아가도록 남겨두지는 않겠지?


: 제프리가 사귀게 된 이스트엔드의 소녀가 있거든. 아만다 빌 Amanda Beale,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닳을까 봐 혹시 물에 젖거나 훼손될까 봐 여행가방에 넣어 다닐 정도인데, 이 친구와의 우정이 제프리를 빛으로 이끌게 돼. 자세한 사연은 비공개.


: 이씨가 들려준 제프리의 삶을 생각하니, 궁금해지는 게 있어.

어떤 이들은 고난과 좌절, 상실 속에서도 비탄에 빠지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려고, 아니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삶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이들은 좋아 보이는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바르고 선한 길을 두고, 비딱하게 살아가는 쪽을 향할까?


인생의 미스터리야.

무엇이 인간을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고결하게 만드느냐.

어떤 이들은 평균적인 혹은 그 이상 좋은 지위를 가졌으면서도 파렴치한, 범법 범죄자의 길로, 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가는가.


: 제프리는 다른 존재를 비난하지 않았어. 먼저 못된 짓을 꾸미지도 않았어. 피부색으로 인한 편견이나 차별, 혐오도 없었어. 불운의 연속에 대해서 분노하지도 않았어. 고난 속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제프리의 자세는 시사점이 있어.


자기가 잘하는 일을 알고 있었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았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어.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리는 행위가 제프리에게 뭔가를 선사해주지 않았을까? 흐음. 마치 구도자의 수련행위처럼.



Maniac Magee(Little Brown Books)/하늘을 달리는 아이(다른)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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