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씨(이하 이): 디스토피아 소설 리뷰를 연속 쓰고 나니, 시선을 땅으로 끌어와서 현실적인 인생사, 누군가 살면서 만남직한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졌어.
오래 걸리지 않아, 이 소설이 생각났어.
책 표지 아래에 제목 Stoner가 있는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해.
초판(1965년)도 다 판매되지 못할 정도로 인기 없는 책이었는데, 출판 후 50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지금은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어.
점선면(이하 점): 그 명성을 뒷받침할 책의 미덕을 찾았는지?
이: 깊은 사랑과 성실.
예전에 리뷰한 '노멀 피플 Normal People'의 남자 주인공이 떠올랐어. 코넬 Conell은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대학교에 입학해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뉴욕의 대학원으로 입학허가를 받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여자 주인공인 매리앤과의 이별이 눈앞에 있지만, 매리앤은 괜찮다고 너는 가도 된다고 그에게 말하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인생을 밝힌 횃불과도 같은 문학에 대한 사랑을 직업 career로 이어나가는 길을 걸어.
스토너는 문학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보다 극적이야. 부모님의 농장으로 돌아가 그들을 돕는다는 전제로 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하기로 했는데, 그만 영문학 시간에 문학에 눈뜨는, 그래서 사로잡히는 순간을 경험하는 거야. 인생의 횃불이라고 제목에 적었으니, 이를 설명하자면껌껌한 세상에 갑자기 성냥불이 쓰윽 그어지며 빛줄기가 스치는가 했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인생에 훅 들어온 거지.
그 후, 스토너는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꾸고, 대학교에 남아 영문학 교수가 되었어.
점: 인생의 성공자인셈인데! 덕업일치를 이루었으니!
이: 흠, 우리 세대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교수가 되었다면, 집안의 자랑일 거야. 그 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보통 생각을 하지 않지. 스토너도 좋아하는 문학을 공부하고, 학자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겠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아서 말이야.
한마디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길을 걷긴 했으나, 스토너의 삶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어. 독자들이 이 책을 사랑해 온 이유가, 바로 이것.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실하게 순간순간을 살아낸다는 것이라 생각해.
사회적인 역할과 지위 말고, 한 개인의 인생은 가족에 매여있지. 스토너는 가장 친밀함을 느끼고 수용감을 줄 수 있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실패해. 마치 영문학 시간에 문학에 눈뜨고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한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지만, 안타깝게도 이 여자는 스토너를 사랑, 만족, 안정, 풍요의 세계로 이끌지 못해. 오히려 스토너를 외롭게 하고, 그가외로움의 돌파구로 일에 몰두하는 걸 보면 또 비난과 힐난으로 괴롭혔지.
모든 첫 만남의 번뜩이고 강렬한 이끌림의 순간이 옳은 것만은 아니란 걸 보여주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순간을 오해하고, 속아 넘어가는지!
점: 일에 그렇게 열정을 쏟는 스토너였다면, 적어도 일에서는 만족과 성공을 거두고, 그게 조금은 보상이 되지 않았을까?
이: 안타깝게도, 그는 열정적이고 특별한 대접을 받는 전설적인 교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교내 정치에서 실패해. 문학과 교육에 대한 순수한 사랑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었던 거지.
작가가 영문학 대학교수였으니, 소위 교육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조차 권력의 갈등이 있고, 그로 인해서 틀어지는 결과들을 많이 보았겠지. 그게 현실이기에.
심지어는, 불행하고 냉랭한 부부사이에서 맛보지 못한, 이성과의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스토너는 유부남이고, 상대는 같은 대학의 강사이다 보니, 이 둘 사이에도 교내 정치의 입김이 작용한 거야. 스토너 입장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생사일 수 밖에.
덧붙여, 스토너와 아내 사이에 딸이 있는데, 아내는 스토너와 딸이 너무 친밀해지는 게 탐탁지 않아서 딸을 자기 통제안에 두려고 해. 급기야 엄마의 영향력에 스토너와 딸이 점점 멀어지는 데다가, 딸은 엄마의 지배로 벗어나기 위한 일탈을 감행하지. 이 과정과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힘없는 아버지인 스토너의 마음은 어떻겠어.
점: 영문학 대학교수라는 간판 뒤에는 좌절이 따닥따닥 붙어 있구나. 뒤집어 보지 않는 이상, 그 속을 누가 다 알겠나. 이 씨가 소설 스토너의 미덕이 '깊은 사랑과 성실'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그래도 불을 밝혀줄 횃불하나를 들고, 매일의 삶에서 요구되는 바를 수행하는 것.
대단한 업적이나 영웅적인 서사도 필요 없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스토너에게 담겨있구나.
이: 그의 인생여정을 따라가다, 마지막 그가 스스로 자기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독자도 그 여정을 알기에 질문에 답하며 그의 인생을 평가,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주제넘은 일인 것 같아.
스토너가 스스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느낀 그 마음 그대로가 소중한 것이니까.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 서 있는 누군가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평가를 내릴 자격이나 있는 걸까?
수고로운 인생을 살아내 온 그의 고단함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수용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