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에 집중치료실에 들어갔던 어머니가 4월 5일 일반병실로 다시 나왔다. 가정간호를 준비해오고 있어서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도 된데다가, 결정적인 한방-다시 또 경험한 같은 병실의 간병인의 불평-에 심리적인 저지선이 완전히 무너진 오빠가 서둘러 퇴원일을 결정했다. 바로 4월 11일 오늘로!
어제, 나는 언니와 함께 한 비행기로 제주도로 왔다. 제주시내에 의료기상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읍내에 들려서 삼 남매 먹을 거리를 사들고 시골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물건이 많아져서 창고에서 손수레를 꺼내다가 짐을 싣고 두어번 옮겨야 했다.
늦은 오후, 오빠가 지인에게 부탁한 중고 환자침대가 도착했다. 어머니가 지내던 안방에 어머니 보다 먼저 침대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늦은 저녁에는 의료기상사 사장님이 덩치가 커서 우리가 직접 들고 오지 못한 가정용 석션기와 생리식염수상자를 들고 왔다. 설명을 듣고 작동법을 익혔다.
그리고 고단하고 긴 하루를 보내고 지친 언니가 먼저 잠들었다.
제주도 시골의 공기에는 맛이 난다. 신선한 맛, 달큼한 맛. 시골집은 뒤편과 왼편으로 귤밭이자 텃밭이 넓게 있어서 아침 공기가 좋다. 거기다가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 한 밤 잘 자고 일어나면 아침의 공기와 소리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오른다.
어제도, 오늘도 날씨가 좋기가 이를 데 없다. 와~ 제주도!라고 외지인들이 감탄할 만한 날씨와 하늘이었다. 아침, 언니는 채비를 하고 제주대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오빠와 합류해서 병원 구급차를 타고 어머니를 모시고 올 예정이었다.
나는 집에 남아 집을 정돈하고 가족의 귀환을 기다렸다. 11시 40분쯤 가족들이 돌아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반짝이는 가운데, 들것에 실린 어머니가 마당을 질러 집으로 오셨다. 초록빛이 반짝이는 잔디마당 위로 어머니의 환자복이 눈에 시리게 하얗게 빛났다. 침대에 옮겨진 어머니는 내가 간병하며 만난 3월 중순보다 눈빛이 살아나 있었고, 집안을 둘러보는 어머니의 눈길에 반가움이 깃들여있는 듯 보였다.
'어머니, 집에 오난 좋수가?'
'오.'
'자식들 다 보난 좋지예?'
'오.'
어머니는 환자침대에 누워 당신을 둘러싼 삼 남매를 쳐다보셨다. 새소리가 째잭째잭 들리고, 봄기운에 불어오는 바람에는 달큼한 풀냄새와 햇빛 냄새가 실려왔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살림을 시작한 집이다. 내가 어렸을 때 초가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붕개량, 벽면에 시멘트 공사, 국민학교 졸업할 즈음 부엌개량공사, 몇 해전 현관문 왼쪽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들여놓는 공사, 마루공사를 빼면, 초창기의 뼈대 그대로 70년이 되었다. 마루천장에 나무 서까래가 보이는데, 그 시절 최고로 좋은 나무로 했다고 한다. 최고급 나무로 했다는 나무바닥은 대 여섯 번 침수를 겪다 보니, 약해지고 삭아서 어쩔 수 없이 몇 해전 시멘트 공사로 바닥을 재마감했다.
이 집의 진정한 안주인이 귀환했다.
하지만 주인의 손은 집에 닿지 못한다.
어머니의 손에 닿는 것은 콧줄을 빼는 것을 방지하도록 씌워진 장갑의 딱딱한 밑면뿐.
어딘지 모르게 어머니의 귀환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살짝 들뜬 분위기의 축제 같다고나 할까. 서로 대화 빠르게 오가고, 몸은 분주히 움직이고 마당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잔디는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고, 앞뒤로 다 열어젖힌 창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 이 시간이 좋았다.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서 좋았다.
삼 남매가 같이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가 이 집에 온 것이 좋았다.
삼 남매는 따로 또 같이 바빴다. 한 달치 약봉지가 어마어마했다. 함께 그 약을 하루치씩 분류하여 묶어놓았다. 그리고나서 오빠는 어머니 콧줄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삼 남매의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언니는 어머니 곁에서 말하며 울고, 웃었다.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부족하고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오빠는 가정용 석션기는 작동법을 배워야 했다. 오후 시간은 추가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삼 남매 대화의 주제였다. 오빠가 지인에게 얻었다는 환자침대에 양쪽 가드가 올라온 채로 고정되지 않아 새 침대를 주문해야 했다.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거나 체위를 변경할 때 가드는 꼭 필요했다. 오빠는 그 점을 미리 확인 못했다는 것을 무척 자책했다. 의료기 상사에 전화해서 새 전동침대를 주문했다.
밤, 오빠는 건넌방에, 언니는 마루에 한쪽에, 나는 안방 어머니 침대 곁에서 자기로 했다. 셋 중에서 그나마 내가 힘이 좀 더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