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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31. 2023

집에 가고 싶다

새로운 국면으로

2022. 3. 31. (목)

3월 25일 간병 바통터치 후, 매일 같이 쏟아지는 오빠의 카톡메시지를 보면, 병원생활이 오빠를 더 빨리 말려 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오빠가 신경쇠약, 과로, 수면부족, 불안, 울화, 고혈압 때문에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급기야, 어제 오빠는 '집에 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간병인으로서야 당연히 집에 가고 싶은 거지만, 여기서 말하는 뜻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었기에, 예사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조금 후 요양병원에 대한 메시지도 올라왔다.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갔을 때 걱정되는 부분과, 요양병원으로 모셔가는 상황에 대해서. 그러다가 마음이 집 쪽으로 기울었는지, 집으로 가는 경우에 필요할 거라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었다.


침대가 필요하다, 가래는 어떻게 할까, 매트리스.....


그러다 오빠는 자기 혼자 광야에서 헤매는 느낌이 든다며, 언니나 내가 나그네의 관점에서 보면서 얘기하는 것 같다고, 외롭다고 했다.


하긴, 집으로 모셔가야 하는 경우에 언니나 내가 오빠와 같이 간병을 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늘 곁에서 이인(二人) 간병체제로 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나마 내가 휴직 중이기는 해도 나도 돌볼 가정이 있고, 언니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니, 오빠는 어느 때고 집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입장인지라 그토록 가정간호를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결정적으로 오빠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이유는, 어머니가 밤낮으로 내는 소리 - 신음소리일 때도 있고, 말도 아니고, 알아듣을 말이 간간이 섞여 들리기도 하는 외침-로 다른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들이 불편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차도가 지지부진한 것보다도 주변의 불평이 심적으로 오빠를 더 괴롭힌 것이다.


그러다 오후 3시가 지나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다시 집중치료실로 가셨다는 거다. 호흡곤란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오빠는 일방병실에서 짐을 빼야 한다고 신경에 날이 섰다. 많은 짐을 다 짊어지고 집으로 갈 수도 없어, (일반병실로 다시 오게 되면 또 필요하니) 고민 끝에 근처 지인의 사무실에 짐을 맡겨놓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어머니가 집중치료실에서 언제 나올는지도 모른 채, 삼 남매는 가정간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품 목록을 정리하고, 각각의 것들을 어디서 준비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언니는 근무 중이라, 시간 여유가 되고, 오빠보다 조금 젊기까지(!)한 내가 바빠졌다.


제주시내에 있는 의료기 상사에서 침대, 가정용 석션기계, 석션 튜브, 시트, 그 밖의 소모품들은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약품 목록도 정리하고 온라인으로 구입할 준비를 했다. 콧줄을 정기적으로 갈아줘야 해서 가정방문간호사를 운영하는 의원도 알아놓았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


이 말을 생각한다.

환자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정황에서, 치료의 계속, 중단, 변경등에 대한 요구는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된다. 그래서 환자의 연명치료거부가 거부되는 일이 생긴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환자가 연명치료거부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연명치료중단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기 결정권을 잃었다. 의사들은 자식들에게 설명하고, 자식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어디로 모실지 결정한다. 어디서 어디까지 치료받게 할지를 결정한다.


환자가 되어 몸의 기능을 잃고, 병에 고통당하는 신체적인 권리박탈. 그에 더해  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까지 잃게 된다는 것.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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