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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y 02. 2023

사바사나_송장자세

우리는 언젠가 모두 시체가 된다

2022. 6. 28.(화)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왼편 편마비가 왔고,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오른편 팔다리도 점점 더 말을 듣지 않았다. 대학병원 담당교수 회진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담당간호사가 어머니에게 팔을 들어보라, 다리를 들어보라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선생님 말에 숙제를 해 보이듯 애쓰는 백발노인 어머니의 간절함이 표정에 담겨있지만, 슬프게도 어머니의 몸은 점점 더 움직임의 크기가 줄어들기만 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그렇게 사지의 움직임은 어머니의 몸 안에 갇혀버렸지만, 감각은 살아있다는 점이다. 감각이 살아있기에 꼬집거나 누르거나 만지면 그 느낌을 느끼지만, 그에 대응하는 반응을 못한다는 점. 그래서 더 안타깝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신 후.  나는 루틴으로 돌아왔다. 오전에는 매트 위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거나 요가를 한다.   


오늘, 사바사나.


 사바사나는 우리말로 송장자세이다. 이름이 꺼림칙하지 않은가? 시체의 자세라니.


등을 매트에 대고 온몸에 힘을 뺀 상태로 다리는 매트를 벗어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벌리고, 팔은 몸통 옆에 자연스럽게 내려놓는다. 그러면 몸 위에서 열린 팔과 다리 사이로 흐르는  공기의 흐름만이 존재한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온몸 근육의 힘을 내려놓으면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 어느 순간 모든 근육이 한가닥씩 풀어져 녹듯이 나른하며 몸이 점점 아래로 녹아내리는 느낌이 온다.


 한 시간 정도의 요가동작을 마친 후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가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완의 시간. 몸은 고요하게 내려앉고 들숨과 날숨에 의식도 공허해지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을 지나다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 사바사나 시간, 몸의 정지를 경험했다. 수년간 해온 사바사나였는데, 오늘은 어머니의 마비와 내 몸의 경험이 오버랩되었다. 그 몸의 무거움. 내 몸을 이루는 사지가 나와 연결되어 있으나, 내 통제와는 멀리 떨어져 그저 사물처럼 달려있는 기분.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낯설어진 내 육신을 의식하는 기분.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느끼는 마비란 이런 육신의 낯섬일까?


가만히 누운 채로 어머니가 느낄 이 생경한 경험에 이입되어, 갑자기 나의 의식이 깨어났다. 그리고, 뜨겁게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려서 무거웠던 팔다리의 감각도 빠르게 돌아왔다. 왼팔을 얼굴로 올려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시작된 눈물이 이제는 연약한 인생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졌다.


이 시간을 앞서 고통당한 사람들과, 이 고통의 시간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건강하다 해도, 나에게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도 있는 일. 오른쪽으로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흐느끼면서 울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준엄한 사명인가?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육체에 담긴 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 어느 한순간에 우리 몸의 조종실인 뇌가 잘못되어 제 기능을 못하면, 어느 한 곳이 제 기능이 더디거나 멈추어지면 우리는 이 연약한 육신에 갇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가여운 운명.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죽음의 순간, 어떻게 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은 반드시 온다는 것.


사바사나를 하면서 내 육신 안에 깃들어 사는 내 정신과 영혼을 본다.


필연적으로 이별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내게 주어진 호흡에 마음을 다하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겸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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