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자취 14년, 주부 21년

by 점선면

자취 첫 해, 자취방에서 다수의 생명체를 만났습니다. 작은 부엌 겸 수도가 있는 공간에 드나들던 쥐를 만나고 심장이 발 끝까지 툭 떨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더 이상의 충격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충격은 따로 있었습니다. 방 안에 슬며시 움직이다 멈춘 도마뱀을 만났습니다. 쥐는 재빠르게 도망가버리지만, 이 작고도 신비로운 생명체는 부동의 자세로 있다가 천천히 움직여갔는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충격의 여파가 컸습니다. 도마뱀과 쥐에 이어 3위는 바닷게. 분명 자취방이 있던 곳은 시내 한 복판이었는데, 무슨 사연으로 제 자취방까지 온 걸까요? 아, 바퀴벌레를 빠뜨릴 뻔했네요. 무시무시한 애들이었죠. 그리고 작지만 강한 공동체, 개미떼가 있습니다.


적다 보니, 자취러들끼리 매거진 하나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네요. 자취방에서 만난 생명체들에 대한 사연들을 공유하다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1988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대학교 진학하면서 언니와 함께 한 자취생활이 2001년 11월 결혼을 하면서 끝납니다. 총 14년의 시간입니다. 부부가 되어 사니, 자취라고 부르지 않더라고요. 밥과 반찬을 제가 한다는 건 똑같은 데도 말입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밥으로 부양해야 할 타자가 있다는 게 뿌듯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제가 책임감이 좀 있는 편이거든요.


올해, 둘째가 자취를 시작한다니, 엄마의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현직 자취러 분들이 들려주실 만한 생생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주부로서 21년을 살아온 경험에서 오는 말들입니다. 부제목처럼 '인티제(INTJ) 엄마의 잔소리'입니다.


저는 MBTI 과몰입 형이고, 딸은 MBTI 과몰입을 혐오하는 형입니다. 딸이 고등학교 때 가정학습기간에 며칠 동안 현관문 밖으로 한 발도 안 나가면서도 평안을 유지한 걸 보면, I(내향)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항목은 모호해서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딸 덕분에,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공개하지 않는 저의 개그본능이 가끔 발동합니다.

'엄마, 너무 웃긴다.'라는 말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 세상에 나의 유머를 듣고 웃는 사람은 네가 유일한 사람이야. '라고 답합니다.

차가운 인간이라는 인티제도 사랑하는 딸 앞에서는 가끔 주책도 부리고, 실없는 소리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 이 매거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여자 인티제'의 수다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논리와 효율을 중요시하는 인티제이지만, 마음에 가는 대로, 실없는 말도 해보겠습니다. 이러다 배가 산으로 가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지만, 산으로 가면 어떤가요?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 뭐라도 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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