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취방은 너를 위한 공간이다

네 공간을 친구들의 놀이터로 만들지 마라

by 점선면

외향형이신 분들은 제목을 읽고, '아니 뭐래?' 생각하신 거 아닐까요?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얼마든지 먹고, 놀고, 잠도 잘 수 있는 나의 자유공간 자취방을 꿈꾸시거나, 자취방을 놀이터처럼 쓰면서 잘 사시는 분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일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 주세요. 세상에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다양한 생명체들과 원치 않은 동거를 했던 자취방을 떠나 두 번째 방으로 옮겼습니다. 학교와 걸어서 5분 거리인데, 친구들이 놀어왔던 기억은 없어요. 각자 공부하느라고 바쁜 것도 있었지만, 친교에 자신도 없고, 필요도 못 느끼는 고독한 존재인 여자 인티제 여고생이었습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서울에서 언니와 자취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학교가 너무 멀었어요. 버스 타고 2시간, 전철로는 한 시간 반. 이러니 대학 친구들을 집에 부를 수가 있어야죠. 아니, 거리 탓만은 아니고요, 가까이 살았어도 친구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신, 언니의 친구들이 자주 집에 왔습니다. 언니는 친구의 친구와 친해지고, 그 친구들의 모임에도 스스럼없이 나갈 수 있는 관계형 인간이었습니다. 인간 기억지능이 아주 탁월한 언니는 사람을 한 번 보면 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고요, 심지어 그때 입었던 옷까지 기억이 난답니다. 언니는 그냥 스캔 입력, 저장의 프로세스가 거의 수초 안에 자동으로 일어난다고 하니, 가히 경이로울 정도지요. 저 같은 사람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나 사람을 기억하지,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어렵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게 좋은 사람인데 집에 와보니,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방의 공간은 뻔한데. 숨을 수도 없고요. 계획에도 없던 외출이라도 해야 할까요? 그것도 인티제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냥함과는 거리가 있는 성격인데, 언니의 친구들이 인사를 해옵니다. 나는 뻘쭘하고 불편해서 간단히 대답합니다. 그리고, 내가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애씁니다.

뭔가 내가 하는 것 같은데도, 언니들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요. 시간은 시간대로 가고, 불편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갑니다.


언니의 친구랑 몇 주전에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언니한테 전화를 했는데, 때마침 언니랑 같이 있다가 스피커폰으로 저한테 인사를 해왔습니다. 저도 맞인사를 했죠.

"00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제 인사에 그 언니의 응답이 이렇습니다.

"00아, 예전의 까칠함이 많이 사라진 거 같다."

"예?...... 예전에 제가 어땠을까요?"


지방대를 다니는 아들은 기숙사에서 살기는 하는데 원룸에서 자취하는 친구나, 선배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군 입대 전에는 하룻밤, 어떨 때는 몇 밤씩이나 같이 지내다 오기도 하더군요. 남편도 군입대 전후로 자취하는 친구집에 며칠씩 머물렀던 얘기를 하고요. 군복무 중인 아들은 제대 후에는 기숙사에서 지내지 않고 원룸을 얻어서 자취를 하겠다고 벌써 벼르고 있습니다.


막 대학을 입학한 신입생 때는 새로운 관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의 입장에서 만남은 가지고 싶고, 돈은 아끼면 좋을 겁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료 공간이 어디일까요? 바로 자취방입니다. 기숙사처럼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통금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이런 공간만큼 편한 다른 대안이 없을 것 같네요.


자, 인티제 엄마는 최악의 상황까지 먼저 상상해 봅니다. 사람들을 잘 알기도 전에, 방을 모임 장소로 한 번, 두 번 내어주다 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느 날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올 것도 같네요. '00네 방으로 가자.' 이런 말을 듣는 게 왜 나쁜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자취방을 친구들에게 내어주는 것이 뭐가 나쁜가요?


인티제 엄마라 말합니다. 정말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해 줄 만한 사람에게 천천히 공간을 열어 주는 거라고. 자기의 공간은 자기가 살며 휴식하는 곳입니다. 방을 내어줄 당사자의 마음을 헤어리지 않고, '00네 방으로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00 이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활짝 열린 문은 시간이 지나면 닫기 어렵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전에 먼저 방을 내어준 사람이 먼저 불편한 감정을 겪어야 하고, 문을 닫는 행동을 하는 시점에는 타인의 불편한 감정까지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너를 존중하고 네가 너의 공간을 내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자기가 머물다 가고 나서 남은 너의 입장도 생각해 줄 만한 사람들을 첫 만남에,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게 좋아. 그래서 네가 기꺼이 '내 방으로 가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너의 결정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때 초대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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