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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21. 2023

긍휼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 

2022. 5. 29.(일)


새벽 4시 30분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 오빠는 걷느라고 숨이 찬 데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119로 병원에 가고 있다.'


얼음물 한 바가지 끼얹은 기분으로 정신이 퍼뜩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카톡메시지를 보니 새벽 12시 2o분, 새벽 2시 15분에 오빠가 단체 대화방에 어머니가 이러저러하다고 올려놓은 글이 있었다. 


가정간호를 하면서 오빠가 가장 걱정스러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던 상황이었다. 

호흡곤란으로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하고, 석션으로도 해결이 잘 안 되니, 발을 동동 구르다가 구급차를 불렀던 거였다. 


7시쯤 다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제주대학교 집중치료실로는 못 가고, 시내 다른 종합병원 집중치료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언니는 5월 20일부터 제주도에서 어머니와 지내다 바로 전날 28일에 올라갔으니, 나보고 내려오라고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빠를 위해서 제주도로 가야 할 상황이었다. 


시골집에 도착한 시간 4시 30분. 잔뜩 흐리고 비도 살짝 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건넌방에서 오빠가 훌쩍이는 기척이 들렸다. 발길이 오빠 쪽이 아니라 먼저 안방으로 끌렸다. 


비어있는 침대. 

어머니의 부재. 


저 침대에 누워서 힘들어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심장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바닥에 대고 기도했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물 콧물이 흐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도록 기도하다

지쳐 숨을 고르고 일어나 보니, 6시가 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니, 눈은 퉁퉁 부어 있고, 얼굴에 실핏줄들이 터져서 온 얼굴에 주근깨처럼 핏빛 점들이 가득했다.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냉정을 찾아, 그때까지 방에 앉아 있던 오빠에게로 가, 늦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담담한 동거에 들어갔다. 

마음도 몸도, 따끈한 게 필요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식재료도 마땅치 않아, 냉동실에 있는 만두 한 봉지 찾아내 만둣국 끓였다. 

부엌 식탁에 앉아, 뜨문뜨문 말을 주고받으며 만둣국을 먹었다. 


다니는 교회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가끔 당신이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우연히 마주친 새 한 마리가 다리가 불편해서 절뚝이는 모습에 안쓰러웠던 마음. 

어미개와 떨어져서 어느 날 집으로 입양된 새끼 강아지가 밤새 낑낑대며 우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 

당신이 젊은 시절에 폐결핵에 걸려서 하나님이 앞에서 낮아졌던 마음. 

오랜만에 찾은 고향마을에서 만난 이웃 할머니가, 기력이 쇠하여 죽음을 앞두고 회개와 축복의 기도를 부탁하며 한참 어린 당신을 '목사님'이라고 존칭한 것에 대한 송구스러운 마음. 


그 긍휼의 마음을 투영하여, 우리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는 하나님 마음을 설파하였다. 

작은 것, 연약한 것, 사라질 것, 병든 자,  슬픔 당한 존재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이 흘러나오기에 설교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 


오늘 어머니의 침대 위에 엎드려 드린 나의 기도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느헤미야 9:19)


아버지의 긍휼이 없으면,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살까요?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집중치료실에서 밤을 보낼 어머니를 보살펴 주세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오빠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주세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게 해 주세요. 그 길을 따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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