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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24. 2023

제주도 파란 낮을 걸어

집으로

2022. 6.1.(수)

지방선거일이라 공휴일인 날.

나는 오늘까지 제주에 있었고 내일 다시 인천으로 돌아간다.


어머니가 J병원 집중치료실에 들어간 것이 5월 29일이었고, 다행히도 코로나 제한조치가 완화되면서 5월 30일 월요일부터 집중치료실 환자면회가 가능해졌다. 고작해야 12시 30분부터 13시까지, 면회신청자들이 대기 순서대로 이 30분 안에 시간을 쪼개어 한 명씩 들어가야 했다. 


코로나...! 하마터면 제주도에 와서 어머니 얼굴도 한 번 못 볼 뻔했다!


5월 30일 월요일에는 내가 면회를 들어갔다.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소매를 매만지자 가늘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지난 주말 어머니가 폐호흡이 안되어 온몸의 근육으로 겨우 호흡했다 하니, 무척 지치기도 하셨겠다.


오빠는 그간 어머니의 병세에 치매가 동반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자주 보았다면서. 오빠는 어제 겪은 어려움 때문에 더 이상 가정간호를 할 자신을 잃은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은 삼 남매의 단체 대화방에 올라오는 내용으로도 이전부터 감지됐었다.


요양병원 얘기를 꺼냈고, 시내보다는 시골집과 가까워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제한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했더니, 그래도 심리적으로 가까이 있어야 좋겠다고 했다.


5월 31일 화요일에 오빠가 면회를 마치고 나서, 둘이 같이 읍내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가서 상담을 받았다.


오빠는 오늘이라도 내가 인천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지만, 공휴일인 수요일이라 비행기표가 없었다.  아침 일찍 혼자 집을 나섰다. 뚜벅이가 되어 제주도를 좀 다녀볼 참이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홀가분하게 차려입고 가방은 가볍게, 집을 나서 걸었다. 결혼하고 남편, 아이들과 시골집을 찾을 때는 늘 차를 렌트를 해서 다녔기 때문에, 보통은 교외로 동선을 잡아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내 발길이 마음 가는 대로 갈 거다.


우선은 시내에 있는 한라수목원으로 갔다. 제주도의 광활함을 아는지? 수평선이 내려다보이는 뻥 뚫린 광활함. 시골집이 있는 동네도 제주도 거센 바람을 피해 나지막이 들어앉은 곳이라, 천지사방이 하늘이고, 멀리 한라산이 보이지만, 숲다운 숲이 없다. 숲길을 걷고 싶었다.


면회시간에 맞춰 어머니를 보러 갔다. 병원은 신제주 초입에 있어서 주변이 시내 같지 않고 고즈넉하다.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어머니를 보니,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야인, 어떵 영 컴컴헌디 와시냐? (얘는 어찌 이렇게 캄캄할 때 왔니?)'

시간이 12시 30분이 지난 환한 대낮인데, 어머니는 시간의 감각을 잃었나 보다.

내 입모양을 보라고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

'지금 낮이라 마씨....'

주르르 눈물이 흐르면서, 어쩌면 어머니를 보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했던 말을 또 했다.

'어머니, 고마워. 고마워...'

'오... 알안.'

그래도 제법 대화 같은 대화를 하고,  면회시간이 끝난다는 안내를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마스크를 도로 썼다.


병원을 나오고, 길로 나오면서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이번에는 복작거리는 시내로 가봐야겠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 서문시장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바로 면해있는 국숫집에서 점심을 든든히 먹고, 탑동바닷가 쪽으로 걸었다. 한낮의 해가 뜨거웠으나 파란 하늘이, 시원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줬다.


그리고 관덕정. 고등학교 1학년때 자취하면서 버스 타고 매일같이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는 관덕정에 티켓까지 사서 들어갔다. (이런, 재외도민증을 안 가지고 내려왔어!)

혼자 걷고,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 6월 제주도의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오빠는 오늘 어머니 물건들을 정리한다고 했다. 뭘 어떻게 하는 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보고 천천히 되도록 늦게 들어오라고 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사색에 젖어 몸을 놀리며 마음을 다스리려는 거겠지.


그럼, 난 또 어디로 가나? 걸어서 칠성로를 지나고, 동문시장을 구석구석 걷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나와서 어디든 먼저 오는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가 왔고, 타고나서 노선표를 보니 조천까지 가는 버스다. 종점까지 가보자. 종점에 절물휴양림이 있단다.


절물휴양림에 들어갈 때는 해가 있었는데, 그 안을 걷는 사이 해가 지기 시작했다.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까마귀 떼들이 우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 많던 사람들도 빠져나가고, 흐리고, 어두운 기운이 내렸다. 막 문을 닫을 시간이 있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내가 타고 시내로 갈 버스는 30분이나 남았고.


입구 가까이 있는 편의점에 갔더니,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빵을 판다. 오호~ 제주현무암 빵이라고! 포장을 뜯어 한두 입 베어 물다가 사진을 찍었다.  맛이 좋아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가족들 줄 만큼 몇 개를 더 사들고 나왔다. 저기,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었다.


눈부시게 푸르던 제주도의 낮 대신 푸른 밤이 내리고 있었다. 탔던 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로 바로 갔고, 거기서 또 기다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동네에서 내리니 주위가 어두워져서 길가에 가로등이 켜졌다.

 


어머니는 지금 있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실지도 모른다.

상황이 나아지면 일반병실로 나오실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퇴원을 하면서 요양병원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단, 이번의 선택의 시점에서 다시 집으로 모셔온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골집, 우리 집, 어머니가 살았고, 나를 낳아 기르셨던 그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 이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올 수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집.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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