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쓰던 농기구를 놓고, 대신 펜을 잡기 시작한 것이 일흔두 살부터였습니다. 그러한 처지에 책이란 말이 정말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칠순 초등학생이란 명예로 배움의 장소를 엿보게 된 것은 갑자기 들이닥친 외로움과 우울증을 해소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처음은 미안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차츰 지도선생님과 푸른 숲의 따뜻한 도움으로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년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데 호감을 갖고 글을 써보게 되었지만 초보운전기술은 단번에 나타납니다. 너무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역사의 한 토막이면서 남기고 싶은 추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자란 솜씨를 어느 한 분이라도 관심 갖고 봐주신다면 더없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겨울 억새와도 같이 빛바랜 저를 푸르게 도우려고 애써주신 고정국 선생님과, 3년 동안 교통편을 제공해 주신 김진숙 시인, 그리고 꾸준히 배움을 나누시던 문우들께 뜻깊은 감사를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6년. 초겨울
오계아
부엌 맨바닥에 앉아 아궁이에 불지피면서 4언4구의 시 비슷 한 글을 쓰는 것에서 출발한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2001년 한수풀책사랑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벗하고, 가르침도 받으며 어머니는 무척 행복해하셨다. 2005년에 제주 MBC여성편지 쓰기에 6번 입상하고 서울 MBC에서 주최한 MBC 여성 백일장 시 부문 특별상, 2006년에는 제주문학 시조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 상승의 기류를 타고, 드디어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이 걸린 책을 내놓으셨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의 기억부터, 4.3 사건, 6.25 같은 역사적인 사건, 결혼과 시집생활, 시부모님의 타계, 아버지와 사별에 이르는 가족의 이야기, 기행문, 방송사에 보낸 투고 원고, 백일장에 낸 원고들을 다 끌어모아 놓은 책이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길었던가. 내가 대학 3학년일 때(1993년) 어머니가 자신이 쓴 자서전을 보여줬는데, 그것이 이 책의 원류인 셈이다. 어머니는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풀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책이 나오기 전까지도 몰랐다. 어느 날 어머니가, 행복과 만족감에 자신의 출판소식을 전할 때까지. 일하고 아이 키우기에 너무 바빴다면, 핑계인가? 육아휴직 중이긴 했지만, 4살 2살 아이를 키우며어머니의 도움은 의지하지 않는, 기대하지 않는 처지였다. 자비로 책을 낼 준비를 한다는 것까지는 몰랐어도 어머니가 어디에 마음을 쓰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