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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27. 2023

뭍을 보는 개구리

2010년, 오계아 님의 세 번째 책



어머니의 자아상은 개구리였나 보다.

폴짝 뛰어봐야 사람 한 뼘도 못 미치는 작은 존재.

그래서 늘 머물던 우물에 머물며, 그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으니, 빼꼼 세상을 보고서는 후다닥 무서워서 다시 우물로 숨어드는?


어머니는 세 번째 책에 제목을 '뭍을 보는 개구리'로 지었다. 개구리가 용기를 낸  모양이다.


서문을 보면 첫째, 두 번째 책처럼 부족한 학식과 경험을 빚대어 자신을 개구리로 부르고는 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독특한 면모가 있다.


어머니가 2008년 두 번째 책을 낸 뒤, 시력이 나빠져 눈수술을 받았는데, 회복이 안 되어 고심하던 차에 어느 날 상상할 수 없이 휘황찬란한 세계를 꿈속에서 만나고 그 뒤 회복을 얻게 된다.


이 책은 살아온 이야기와 더불어 영적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시집와서 십 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은 걸, 모두 자신의 불찰(죄)라고 생각하던 어머니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얼마나 기쁠쏜가?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산송장이 되었다. 그것도 어머니의 팔자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또 한 번 마음은 산산이 부서진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팔자를 탓하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차에, 부처에게 치성을 드리면 아버지가 살아날 거라는 어느 스님의 말을 듣는다. 어머니는 시부모님의 의심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들이 살아날 희망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음을 돌렸다) 바닷가 사찰로 아버지를 손수레에 싣고 가서, 간병생활을 시작했다.


스님이 불경을 외우라고 하는데, 어쩐다, 어머니가 한글을 못 깨쳤다. 배워 본 거라고는, 일제강점기 야간교습소에서 일본어를 배운 게 전부다. 아버지는 죽을 둥 살 둥하면서도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어머니가 드디어 문맹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해풍을 맞으며 산책하고, 절에 머물며 차츰 병이 나아갔다.


그렇게, 남편을 되살려주고, 어머니를 활자의 세계로 인도해 준 불교의 영향은 심히 지대했다. 어머니는 열렬한 불교도가 되어 새벽마다 불경을 필사하고 읽고 암송했다. 뛰어난 암기능력 덕분에 심지어는 마을에 무슨 액막이 기원이라도 필요하면 미신과 불교를 넘나드는 경계선 어중간한 지점에서 어머니가 초대되어 불경암송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아들도 살려내, 기대해 본 적 없는 손녀딸들도 태어나자, 어머니의 불교도 행보에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어머의 뱃속부터 시작해서 소년기의 일부까지, 아주 종교성이 강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러다, 순수한 열심을 다하던 종교생활에서 미심쩍고, 선하지 못한 면면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머니는 점차 절을 멀리하고, 더불어 맹목적인 충심에서 점점 회색분자가 되었다.


그랬던 어머니가 눈이 멀고, 꿈속에서 휘황한 세계를 보고 나서는 믿음의 급반전을 이뤘다. 하나님의 계시이자,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믿고 이 책의 구상을 시작하게 된다.


배움의 깊이와 상관없이, 사람에게 주어진 종교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는 강한 신념이고, 누군가에는 쓰잘데 없는 허구이자 정신병 같은 세계다.

분명한 건, 어머니에게는 긍정적인 강력한 향정신성 기제였다. 그 덕분에 삶을 지탱하고 살았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게 어머니가 가졌던 독특한 점이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세상 쿨한 어머니, 잔소리도 없다. 야단도 없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다그침도 없다. 자기 인생에 하소연도 없다.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어머니들과 참 많이도 다르다.


그 다름 덕분에 어머니는 이후 또 다른 지평으로 한 걸음씩 또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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