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오늘은 ‘가스타잌’이라는 친구학교의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 이곳은 당연하게 재학생이 아닌 외부인은 출입 금지. 하지만 여기에 재학 중인 친구의 몰지각한 배려로 이곳은 꽤 많은 음악학교 지망유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드나드는 곳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수시로 ‘컨트롤러’라고 명명된 관리인은 연습실들을 순찰하며 외부인을 색출하여 퇴장시킨다.
전차나 버스의 무임승차자들을 색출하는 공무원들도 ‘컨트롤러’라고 하던데 독일은 조정당해야 할 자유인들이 많은 모양이다. 곧 닥칠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연습은 해야 하고 연습실은 턱없이 부족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실 시험 준비가 쉽지는 않다. 다들 처지는 비슷하다. 저마다 어렵게 온 유학인데 공부할 장소도 없으니 연민이 인다.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컨트롤러를 기다리며 오늘은 디크레센도를 연습한다. 가창 시 소리가 줄어들게 하는 기법인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방법 하나. 디크레센도 구간에서 발음 시 멜로디를 담당하는 모음을 길게 뽑은 후 은근하게 자음을 없애버리면 도움이 된다. 단어에서 오직 모음만 남는 셈이다. 소리는 줄어들며 여운은 남고 의미는 없어진다? 기술과 감동은 이런 건가.
얼마 전 철저히 계산된 효용으로 무임승차를 외치던 기독교인 유학생의 기도에 어이없어하며 돌을 던지던 내가 생각난다. 무임연습실을 이용하는 나는 뭔가. 세상이 합심해서 돌을 던지는 비도덕적인 그녀에게 나까지 합세해서 돌을 던지기가 싫어졌다. 당당함과 비굴함 그 중간 어디에서 노래하는 나를 보자니 눈물이 난다. 연습 시간도 부족한데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