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Aug 28. 2023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사람의 변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애견인들이 보기엔 어떻게 그 예쁜이들을 무서워할 수 있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 산책 나온 강아지들은 내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럽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나를 물까 봐 겁이 났다.


 내가 왜 강아지를 무서워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긴 하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은 작은 개천 옆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처럼  좁은 골목 사이에 여러 집들이 대문을 마주하고 있었고 우리 집은 골목 맨 끝집이었다.


쌍문동 골목보다는 작은 골목이었지요. Photo by google


 봄인지 가을인지 모를 적당한 날씨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후 노곤한 몸을 이끌고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걷던 발걸음을 일순간에 멈추어 세운 것이 있었다. 바로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당당하게 서있던 개였다. 진갈색의 거친 털을 가지고 있고 몸집이 크고 날렵한 셰퍼드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개가 골목 첫 집 파란 대문집 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개 짖는 소리가 온 골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셰퍼드와 나의 대치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발바닥에 딱풀을 붙인 것처럼 땅과 접착해 버린 내 발만큼 셰퍼드 녀석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강아지의 목줄을 매고 산책시킨다는 개념이 없었다. 주로 집 마당에 개를 묶어두고 밖에서 키웠다. 집 지키는 용도로 키우는 개들이라 그런지 발소리만 나면 그렇게 무섭게 짖어댔다. 셰퍼드는 나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개를 묶어두지도 않고 밖에 돌아다니게 놔둔 주인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너무 무서우니 울음도 나오지 않고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딱 이렇게 생긴 셰퍼드가 저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나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Photo by google


'제발 주인아저씨, 나와서 저 개 좀 데려가 주세요. 누가 나와서 저 개 좀 잡고 있어 주세요. 살려주세요.' 속으로는 백번도 더 고함을 질렀지만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누가 나와서 개를 데리고 갔는지, 내가 용기를 내고 앞으로 걸어갔는지, 개가 알아서 집으로 들어갔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기억은 하얀 백지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개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이...


한 연구팀은 뇌가 어떤 한 가지 일을 의도적으로 회상하려고 노력할 때, 이미 저장되어 있는 다른 기억을 잊게 된다고 밝혔다. 망각의 적응 과정으로, 뇌가 최근의 기억을 회상하려고 하는 순간 이미 저장되어 있는 기억과 일종의 ‘경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이미 저장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이 자기가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선택적 기억과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행위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연구결과를 읽고 나니 나에게 그 기억이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지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무서운 순간만큼은 삭제해 버리고 평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선택적 기억이 아니었을까.


 평소 건망증이 심한 것도 장점일 때가 있다.  중요한 걸 잘 잊어버려 문제긴 하지만 무서운 기억도 아픈 기억도 잘 잊는 편이니 말이다.  살다 보면 때론 무섭고 아프고 슬픈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면 평생 괴로울 텐데 망각이라는 친구가 있어 건강하게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다행히 이제는 강아지가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다. 내가 다니는 화실은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이다. 화실에 레옹이라는 푸들이 있는데 워낙 순하고 붙임성이 좋다. 몇 주가 지난 후 레옹이가 안아달라고 내 다리에 붙어있는 모습을 선생님이 보고는 한 번만 안아보라고 하셨다.  절대 물지 않는 아이라고. 용기를 내어 내 무릎 위에 앉혀보았다. 말캉말캉하면서 따뜻한 촉감이 허벅지 위로 느껴졌다. 얌전하게 앉아서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있는 레옹이의 모습에서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내 다리 위에 앉아있는 레옹이

 

강렬한 두려움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유연하게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연한 아메리카노를 조금씩 목으로 넘기며 커피맛을 음미하듯 긍정적인 이미지를 서서히 내 마음에 받아들였다.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은 화실에 가면 제일 먼저 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게 된다. 가끔씩 회원들이 저마다의 반려견을 화실로 데리고 오면 그야말로 개판이 되기도 하지만 전처럼 무섭거나 힘들지는 않다. 이젠 애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 예쁜 강아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또 누가 알까. 퇴직 후 강아지를 키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