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눈물이 많았던 나는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밥상머리에서 눈물보가 터져 버렸다.
순식간에 시야는 뿌예졌고, 눈물을 참으려 밥을 삼켰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밥에서 눈물맛이 났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눈물보는 여전히 내 통제 밖이었다.
감동적이거나 슬픈 이야기를 만날 때,
내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은 처마 끝의 빗물처럼 속절없이 떨어졌다.
이렇게 강력한 눈물보를 물려준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네가 쓴 책 읽다가 어찌 눈물이 나는지 책을 덮었다.
감정이 올라와서 한꺼번에 못 읽고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다. 엄마 친구들도 읽다가 눈물이 난다 카더라."
엄마의 말에 에세이를 쓰며 코를 풀어대던 순간이 스쳤다.
어떤 날은 엄마가 측은해서 눈물을 쏟았고,
어떤 날은 아버지가 안쓰러워 눈물을 훔쳤다.
에세이를 쓰며 눈물짓던 딸이 에세이를 읽으며 눈물 흘리는 엄마에게 물었다.
"진짜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여기저기 많다. 내 마음에 탁 와닿으니까 눈물이 난다. "
나는 엉킨 채 잊혔던 엄마의 마음 한 구석을 가지런히 펼쳐놓았고, 엄마는 글로 정리된 마음을 읽으며 그 속에서 어린 나와 만났다. 엄마와 나는 글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밝히는 빛구슬을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글에서 엄마를 보고, 엄마는 내 글에서 나를 봤다.
"어릴 때 계속 이사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어린것이 기침을 참았네.
그때 내가 안아줘서 참 다행이다.
우리 딸 그래도 잘 컸다.
참 감사하다."
눈 오는 밤, 엄마가 오빠를 업고 논두렁을 걷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나는 눈물이 났고,
엄마는 내 다섯 살의 밤, 기침을 참던 나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같은 책을 두고 서로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출간을 앞두고 내 책을 부모님께 드릴 용기가 없었고,
부모님이 내 글을 읽으실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딸이 책을 내면 보내달라는 실버타운 친구분에게 엄마는
"남사스러운(부끄러운) 집안 이야기인데."라고 하셨고,
아빠는 "엄마 친구들은 안 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두 분은 딸의 출간 자체에는 기대를 가졌지만,
두 분의 페르소나를 벗고 내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는 저항을 느끼셨다.
그런데,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내 책을 홍보하고 계신 분들이 엄마와 아버지다.
가장 큰 반향을 보여준 이름 모를 독자가
엄마, 아버지의 친구분들이다.
엄마와 아버지 친구분들이 책을 많이 구매해 주셨다. 그 후, 아버지 친구분이 큰 감동을 받았다며 후원금을 보내주셨다.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드리니 따뜻한 말씀으로 내 마음에 또 다른 빛을 켜주셨다.
따뜻한 말씀 끝에 '아빠 친구가...' 저 한 마디가 가슴에 쿵 부딪혔다. 아빠를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 분께 받는 마음은 날아온 항성처럼 나를 흔들고 또 나를 밝혔다.
또 다른 분은 책 내용이 좋다며 교회 분들에게 나눠주신다고 5권을 추가로 구매해 주셨다.
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이야기로 만들어주신 친구분 덕분에 항성의 밝기는 더 강해졌다.
책을 구매하고, 읽고, 마음을 전해준 모든 분들 덕분에
빛의 온기는 계속 커지고,
그 온기와 향기로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써나간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엄마와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며 정신의 질서와 중심을 잡아가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엄마의 유산을 먼저 쓰지 않았더라면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된 것도,
엄마의 유산을 먼저 출간한 것도,
인문학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것도,
섬광처럼 내게 왔지만 필연처럼 붙잡은 빛이다.
그 빛으로 내 존재와 가족을 밝히고 있다.
섬광이 내게 던져질 때 눈을 찡그리며 사라지는 걸 보고 있을지,
섬광을 점화해 빛을 확장할 것일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내게 빛의 기회는 빛의 기적이 되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섬광처럼 나타나 반짝이는 환영들을 성급하게 떨쳐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에 가까이 다가가며 그것들을 제 안에 받아들여 품을 것입니다. 현재의 시간을 위해 참된 삶을 과거로부터 끌어올 것입니다.
- <자기신뢰철학> 랄프 왈도 에머슨 -
누구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쑥스러움에 말투가 밤의 속껍질처럼 거칠해지는 엄마가
그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친구분들에게 책을 소개하셨다.
그 보다 더 큰 기적은
눈도 어둡고, 사느라 바쁘고 아파서
문장 한 줄,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적 없는 분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공감했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7, 80세 독자분들은 엄마, 아버지 이상으로 특별하다.
다난한 삶을 걸으며 존재보다 부모로, 가장으로 살아오신 분들에게
활자로 감성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현에 진동을 일으켜 선율의 울림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엄마라서,
철학을 공부해서,
엄마의 유산을 써서,
내 에세이를 써서,
글을 계속 쓰고 있어서
나는 오늘도 필연으로 붙잡은 빛으로 기적을 만든다.
내일 1월 17일 토요일,
엄마의 정신을 전하는 편지극이 '빛이 될 필연'으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2026년 새해, <삶의 모든 순간은 나를 위해 찾아온다>가 찾아갑니다.
인터넷 서점과 도서관 희망 도서 신청으로 도서관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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