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허리 수술 계획을 들은 건 수술 일주일 전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의 허리는 단단하게 연결된 체인처럼 끊을 수 없는 통증을 만들어 엄마를 꽁꽁 묶어놓곤 했다. 찾아가는 병원마다 어떤 수술로도 날카로운 통증을 잘라낼 수 없다고 했지만 엄마를 위한 병원이 먼 길을 돌아 엄마 앞에 나타났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세우기 위해 비가 그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술을 기다리던 엄마는 막상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뒷걸음질을 치셨다. 수술을 하고 나서 몸을 회복을 할 자신이 없다며 통증과 함께 살겠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했고, 아버지는 용기를 가져보라고 했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용기가 아니라 몸의 용기였다.
엄마는 어려운 결심을 하고 4시간 30분의 긴 수술을 받으셨다.
꽉 막혀있던 통증의 길을 뚫기 위한 수술은 엄마의 허리에 15센티의 긴 흉터 세 개를 남겼다.
드디어 엄마의 허리에 박혀있던 통증이 뽑히고, 나사못 6개가 박혔다.
수술 후 엄마는 가끔 섬망*에 정신을 내어주셨다.
아이의 마음으로 해를 기다리던 엄마가 정말 아이가 되셨다. 아이처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셨다.
더 이상 딸을 배려해 병원에 올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고, 곁에 있으면 좋아하는 본성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내셨다.
엄마의 섬망증상은 밤이 되면 색이 조금 더 짙어졌다.
약을 거부하기도 하고, 주삿바늘이 아프다고 뽑아버리기도 하셨다.
병원에서 엄마를 처음 본 날, 엄마의 얼굴엔 붉은 선 두 개가 그어져 있었다.
링거를 거부하던 손길 끝에 주삿바늘이 엄마의 얼굴을 그었다.
엄마의 기억은 밤을 붙잡고 있지 못했다.
아침이 되면 엄마는 다시 치유에 협조적인 환자로 돌아왔고 증발된 밤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언어를 통해 엄마의 기억 속에 빚어졌다.
엄마는 종종 현실의 바닥에서 발을 떼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나는 엄마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 현실의 발을 디디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잠시 떠다니다 현실로 돌아오곤했다.
척추의 지지대가 엄마의 허리에 자리 잡는 동안, 정신의 지지대도 엄마의 영혼에 다시 배열을 맞추고 있다.
나는 엄마의 가장 붙잡고 싶은 기억이 되어 엄마를 바라보며 기억을 함께 쓰다듬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고,
엄마의 머리카락을 넘겨줬던 적이 있었을까.
엄마는 이제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몸짓으로 온 감각을 모아 한 걸음씩 발을 내민다. 나는 내 어릴 적 첫걸음을 이끌던 엄마의 자리에 서서, 엄마의 작은 걸음에 손을 포갠다.
숲 속에 들어가면 뱀이 그 껍질을 벗어버리듯이, 사람은 자기의 연령을 벗어던진다.
그리하여, 생애의 어떤 시기에 있어서도 언제나 어린아이가 된다. <에머슨 수상록>
엄마와 나는 껍질을 벗고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간다.
생의 후반전으로 훌쩍 들어선 엄마와
생의 후반전이 시작된 나에게
엄마의 수술은
생애주기를 접어 두고, 생의 적기를 건네준다.
나는 엄마와 함께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엄마의 눈은 숲을 향하지만 나의 눈은 엄마를 향한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가 보는 숲을 함께 본다.
어느덧 엄마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예전처럼 나를 "우리 딸"이라고 부른다.
이제 나도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는 내가 떠난 숲에서
아이가 맨발로 흙을 밟듯
오늘도 작은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섬망 - 고령 수술 환자에게 찾아오는 인지 기능 저하, 주의력 결핍, 의식 혼란이 특징인 일시적 뇌 기능 장애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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