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넘어지면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엄마가 허리 수술을 받고 나면 금방 털고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먼지를 털기는커녕, 눈 앞의 먼지를 손으로 흩어버리는 것조차 못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당당한 직립은 사라지고, 헐벗은 의존이 부풀어 올랐다.
엄마는 워커(환자용 보행기)에 의지하고도 몇 발자국 나아가지 못했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발음은 어눌해지고, 작은 문장을 전하는 일조차 힘겨워보였다.
무력하게 해체된 자아의 파도가 엄마를 덮치고 있었다.
매일 퇴근하는 차 안에서 수화기 너머로
"우리 딸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하던 엄마는 듬성듬성 구멍 나고 바람 빠진 목소리로 대답만 겨우 했다.
"이제 포기할란다..."
나에게 용기를 주던 엄마가 포기를 말했다.
요의를 느끼기 전에 실수를 하는 엄마에게서
'마음의 근육'도 '몸의 근육'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답답함이 가슴을 밀고 들어왔다.
당연한 것들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오고 나서야
걷고, 말하고, 웃었던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눈물이 되어 밀려왔다.
엄마에게 남아있는 일상을 함께 보내기 위해 주말이 되면 엄마에게로 갔다.
주말 동안 엄마 곁을 지키는 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 후회하기 싫은 나를 위해서였다.
입으로 힘겹게 숨을 쉬며 자고 있는 엄마에게서 영혼이 달아나지 않기를,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엄마의 영혼을 붙잡기 위해 엄마를 붙들고 있었다.
출근을 위해 엄마 곁을 떠나야 하는 날 새벽, 엄마는 고열에 시달렸다.
설사를 계속하던 엄마는 끝내 혈변을 봤고, 허리에 여섯 개의 나사못이 박힌 지 40여 일 만에 중환자실 침대에서 뒤척임도 없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엄마의 '숨'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만 하고,
엄마 곁에는 가족이 아닌 의료인이 있어야 했다.
느리게 가던 엄마의 시간이 그렇게 잠시 멈췄다.
엄마의 시간은 잠시 멈췄지만 내 앞의 시간은 흘러가고,
엄마의 멈춘 일상의 지면을 밟고 나는 또 걸어가야 했다.
마음은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지만
그 균열의 틈으로 일상이 빠지지 않게 나는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내 앞에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앉아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울퉁불퉁했던 마음을 펴지게 했다.
아이들과 수업하다 보면 에너지를 얻었고,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걱정을 잊었다.
작은 수첩에 적어 놓았던 <아카바의 선물>의 한 구절을 다시 읽었다.
나는 이 세상을 웃으며 살아가리라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른다.
모든 것은 세월 따라 흘러가고, 이것 또한 시간이 해결하리라.
내 마음을 갈라지게 한 건 나 자신이 결정한 내면의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일 뿐,
내게 일어난 사건이나 주어진 환경이 아니었다.
슬픔으로 인해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던 마음의 웅덩이에 물길을 뚫었다.
맞은 편에 쩍쩍 갈라졌던 바닥으로 마음이 흐르게 했다.
아프고 힘든 시간도 세월 따라 흐른다.
행복하고 기쁜 시간도 물처럼 흐른다.
나에게 온 '지금'도 흘러간다는 사실을 품은 순간,
고였던 내 마음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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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 제미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