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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Nov 03. 2023

적절한 휴식과 여유의 중요성




첫 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다시 공부모드로 돌아왔다.

시험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집중력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지쳐있다는 느낌이었다.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잠깐 약속 있을 때를 제외하면 매일을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으니 말이다.

공부 외에 딱히 할 게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백수주제에 집에서 놀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있을수록 오히려 내가 도서관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변질되고 있었다.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수험생으로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의 공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지나 보면 많은 시간을 공부했지만 막상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것이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공부에만 집중했음에도 그만큼 남는 것이 없다면 수험생에게 이보다 더 슬픈 것이 있을까


습관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될걸 인지했지만 나는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불안함이었다.

공부 외에 다른 걸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불안함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나는 도서관에 있기를 고집했다.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갉아먹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작은 알바 하나를 시작하게 됐다.

원래는 친구가 하던 알바였는데 취업에 성공하여 나에게 이어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에겐 너무 고마운 제안이었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잠시나마 반 강제적으로라도 나를 끄집어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소한 것이라도 나에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공부적으로든 공부 외적으로든


친구가 나에게 물려준 알바는 전문직 준비 학원의 카운터를 보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2번만 나가면 됐고, 또 저녁시간대만 일할 수 있어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저녁에는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고, 학원에는 수업을 듣거나 공부하는 학생들만 남아있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자유롭게 쉴 수도 있었고, 공부를 해도 됐다.


공부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어차피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자고 한 알바여서 대부분은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하면 됐다.

적어도 학원에 있을 때만큼은 도서관에 있을 때처럼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도 큰 힘이 됐다.

회사 다녔을 때의 월급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소소하게라도 내가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좋았다.

전혀 수입이 없었을 때는 어쩌다 한 번 생긴 약속도 부담스러웠는데, 약간의 월급은 관계에 대한 여유도 가져다주었다.

회사 다닐 때도 당연 월급은 좋았지만, 행복도만을 따지자면 지금의 쥐꼬리만 한 월급이 나를 훨씬 행복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놈의 불안함이 뭐라고...

그냥 눈 딱 감고 공부에서 잠깐만 벗어나면 되는 건데

너무나도 쉬운 일을 그동안에는 왜 스스로 못했을까


어찌 됐든 친구의 도움으로 적절한 휴식과 여유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2년 차 수험생활은 나에게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중요한 기간이다.

공부와 휴식의 적절한 분배는 필수였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조금씩 여유를 찾아나가고 있던 중 카톡이 왔다.

이번에 한국은행 합격을 노리고 있던 스터디원이었다.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혹시 최종합격 소식을 전해주려고 연락이 왔나 싶었다.

그런데 최종면접에서 불합격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보통 한국은행의 최종면접은 10명 중 1명밖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배수가 낮은 편인데, 나와 같이 공부한 친구가 그 1명이 됐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였어도 그게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결과에 덤덤했다.

내년에 또 시험 봐도 합격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잠깐이라도 좀 쉬고 싶다고 얘기했다.

실력자의 여유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휴식이 내년 성과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실력도 마인드도 훨씬 성숙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나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본격적으로 공부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힐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일상의 변화가 필요했던 터라 큰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우리는 갑작스런(?)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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