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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ug 28. 2023

백일장에서 우연히 상을 받다.

    모 은행에서 하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면 상품이 좋았다. 입선이라도 24색 크레파스 하나는 받을 수 있는 대회였다. 물론 입선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어느 햇살 좋은 날, 아이들과 같이 돗자리를 펴고 공원에 앉아 대회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 옆에서 여성 백일장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큰 원고지 종이를 받아보았다. 어릴 때, 백일장 나갔던 기억도 났고 햇살 아래에서 몇 자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도 감사했다.


  대회가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그림을 이미 다 그리고 행사장 안을 뛰어다녔고 나는 어떻게든 매달려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느라 끙끙대었다. 하지만 나는 시를 쓸 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원고지 종이를 대면하고 앉으니 마음속에 숨어있는 온갖 원망과 속상함들이 불현듯 솟아올랐다. 몇 달 사이 급박하게 이사를 하고 직장과 집이 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고생하는 모든 상황들이 다 내 탓 같았다. 막내여서 그런가 마흔이 넘었지만 엄마 생각도 나고 소풍이라는 글제를 받으니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사람 많은 대회장에서 크게 울 수는 없고 원고지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다.



소풍    

 

여든, 그 이후 나이는
 다른 이가 남기고 간 생을 가져와
 덤으로 살아간다지.
 여든 번째 꽃망울이 피고 지고
 연둣빛 잎들이 하늘거리는
 물빛 가득한 어느 날,
 엄마는 말했어.
 
 
 엄마, 내 사는 게 너무 바빠.
 아침 일찍 아이 손 잡아채고
 직장으로 쫓기듯이 뛰어나갔어.
 쉰 목소리의 딸이
 눈물을 글썽였어.
 
 서로 다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주름과 검버섯으로 덮인 손이
 젊고 바쁜 손을 잡았어.
 여든 해 지난 오늘, 이 순간,
 우리 생의 가장 빛나는 젊음의 시간이야.
 너는, 우연히, 또 천천히 만난
 내 소풍친구야.
 
 봄바람 머무는
 어느 들판에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는 그런 거,
 삶은 계란 까먹고도
 깔깔 웃을 수 있는 그런 친구.
 
 급히 잡아채는
 아홉 살 네 딸의 손을
 부드럽게, 따뜻하게
 꼭 쥐어라.
 네 온기 다 주지 않아도 돼.
 쥐고 있으면
 그 작은 손이
 네 눈물을 닦아줄지도 몰라.
 
 생의 봄빛이 마지막인 것처럼
 눈에 아른거릴 때
 함께 돗자리 깔고 나란히 앉아
 웃어줄 거야.
 너처럼.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3등이었고 상금은 오십만 원이었다. 상금보다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더 좋았던 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을 받으러 갈 때 아이들을 데려갔다. 엄마의 좀 다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뜻깊었다. 물론 아홉 살, 여섯 살 아이 둘 다 그저 시상식장에 있던 간식에 더 눈이 갔지만 말이다.


  집은 안 팔렸고 힘들었지만 시를 써서 상을 받자 다시 잊었던 문학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다.  지금부터 잊었던 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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