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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ug 29. 2023

폭풍우 치는 밤, 집 보러 온 그대

  폭풍우 치는 어느 날 밤이었다. 저녁 여덟시 반 정도였나, 비바람 소리에 불안하여 창밖에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를 보고 있을 때, 중개인의 전화가 왔다.


  "사모님, 지금 집 보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문 열어서 봐도 될지요?"


  나는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비바람 치는데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또 그냥 보고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으례 자주 오는 부동산 손님들 중에 한 명이라고. 그런데 집을 본 뒤 중개인이 다시 전화를 했다.

  "집을 사시겠답니다. 다만 가격 조정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매수인은 우리가 제시한 가격보다 좀 낮은 가격을 불렀지만 나는 그 가격에서 좀더 올려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온갖 마음이 다 들었다. 너무 올려서 말했나? 아니야, 그 분이 너무 가격을 낮춘 걸. 그 가격으로 한다는 것도 무리인거야. 지난번처럼 집을 산다고 해놓고 마음을 바꿀 그런 사람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났다. 매수인좀 조정된 가격에 사겠다며 계약금을 보냈다.


  이게 왠일인가? 집을 비워놓고 이사를 온지 다섯 달만에, 그것도 폭풍우 치는 밤에 집이 팔리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주말에 집을 방문해 현관에 있는 여러가지 잡다한 미신 쪽지들과 그림들, 십원짜리들을 다 정리했다. 다만 아이러니한 건, 현관 신발장 안쪽에 걸려있던 가위는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누가 가져갔는지 따질 수도 없기에 그 정도로 마무리했다.


  남편과 나는 집을 판 것이 꿈만 같았다. 분명, 총각 무당은 십월달이 되어야 팔린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석달은 당겨졌고-결론적으로 총각무당에게 준 오만원은 날린 것이다.- 우리가 내야할 이잣돈도 석 달 아끼게 되었다. 집을 산 사람에게 말했다. 어떻게 우리집을 선택했느냐고.


  매수인은 말했다. 집을 본 순간 아주 환한 느낌이 들었다고.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우리집을 좋아해주는 누군가에게 우리집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나도 한 때 그 집에서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적이 있었다고 마음속으로 말해주었다. 집을 아끼고 사랑했었고 집을 파는 그 순간에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집을 팔기 위해 너무 모질게 집을 밀어낸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이별과 만남은 계속 반복되고 그 대상도 더 다양해지지만 한 때 좋아하고 존경했던 그 마음은 변함없이 간직한 채 떠나야한다는 것. 집을 팔며 다시 한번 삶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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