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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ug 27. 2023

집은 안 팔리고 나는 시를 썼다.

  새로운 시작, 3월 2일, 큰 아이는 치아교정으로 부은 얼굴을 한 채 새 학교에 전학을 갔다. 둘째아이는 내 차를 타고 어느 낯선 골목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첫 등원을 했다. 둘째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주차장을 빠져나오다가 사이드미러가 기둥에 부딪혔다. 사이드미러는 덜렁거렸고 내 마음과 똑닮은 사이드미러를 매단 채 둘째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도 출근했다.


  모든 것은 낯설었고 어색했다. 그건 어른인 우리도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빚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사를 와도 좋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주말이면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우리집 보러 오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중개인은 갑이었고 나는 을이었다. 전화를 끊을 때는 중개인에게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남편은 직장에서 힘든 문제도 생기고 빚도 많이 생기자 늘 표정이 어두웠다. 이사를 하자고 한 나 때문에 속상한건지 아침마다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내가 집을 산 뒤 한 두 달이 지난 후, 같은 동의 매수인은 우리보다 더 좋은 가격으로 로얄층을 샀다. 나는 저층인데 그 집보다 더 비싸게 주고 샀다. 갑자기 내가 호구가 된 느낌이었다.


  남편은 집이 언제 팔리는지 얼마전에 신을 내려받았다는 총각무당에게 물으러 갔다.

  "집이 언제쯤 팔릴까요?"

  총각무당은 말했다. "지금이 3월이니까 한 10월 정도 되어야 팔릴 것 같은데..."

  남편은 일곱달을 어떻게 견디냐며 절망했다.


  나는 집을 팔기 위해 해야하는 미신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십원짜리 동전, 말 그림, 욕, 장사 잘되는 고깃집 가위 등등. 특히 말 그림은 내가 직접 그린 뒤 팔아야하는 집 현관 서랍속에 넣어두었다. 십원짜리도 넣어두었다. 그래야 집에 있는 신들이 마음이 상해서 떠난다는 속설이 있기에. 고깃집 가위도 어찌 구해서 서랍속에 넣어두었다. 집은 비었지만 현관안에는 온갖 것들이 다 숨어 있었다.   


  달마다 이잣돈을 메꾸는 날은 속이 텅텅 비는 것 같았다. 월급을 받으면 남편 월급의 절반이 이잣돈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달이 갈수록 마음이 힘들었다. 부동산에 오는 문의는 적었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부동산에서는 우리집이 저층이기도 하고 요즘 우리 아파트로 집 보러 잘 안 온다고 말했다.

 

  나는 속상했다. 내게 기쁨을 주었던 신축아파트였던 우리집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우리집의 그 소중했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고 헐값에 넘기려는 파렴치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집에 대해 시를 썼다. 아직 팔리지 않은 우리집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제목: 우리집을 소개합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건다.

저희 집을 팔아주세요.

평수, 층, 특장점 얘기해주세요.

00 아파트, 33평, 2층. 중문. 방범창. 아이 키우기 좋은 곳. 가격 000

우리 집은 스물자. 지역부동산신문 한 줄 광고.


우리집은 한 줄이 아닙니다.

마음 속을 더듬어 우리집이 담은 추억 속 이야기를

소소하게 꺼내어본다.


로타리를 길게 돌아나가면

찻길 옆으로 쭉 뻗은 길.

그 길 옆에 들어선 아파트 중에 한 곳이지요.

그 많은 아파트 층층이 있고

똑같은 모양새지만

우리집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지금부터 알려드립니다.


크고 작은 창문들이 하늘에 비친 풍경을 담고

아직 녹슬지 않은 현관문을 열어두면

나즈막한 땅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흙냄새가 바람이 되어 지나가는 집이지요.


눈을 감으면 방마다 들어오는 햇볕이

따사롭게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베란다 밖을 내다보면

놀이터가 있어 일년 열두달 아이들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지요.


그 웃음소리의 풍경을 보다보면

삶의 색깔이 환해집니다.

나무들이 들어선 숲속에는 메뚜기, 달팽이, 사마귀, 나비, 잠자리들이 살고 있어서 가끔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듣고 눈을 마주치지요.


현관문에는 비밀번호가 있으나

아이들에게는 비밀없이 열리는 투명문이 있답니다.

아이들이 그 투명문을 열면

목마를 때 목을 적셔주는 물, 초코향이 코를

달달하게 해주는 단내나는 과자들이

넘치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사연을 품은 나뭇잎들의 이야기.

풀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귀를 간지럽히는 그 곳이


우리집입니다.



우리집은 계절을 품었고

넉넉하게 사람을 안아주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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