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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ug 26. 2023

집도 안 팔고 이삿짐 싸기

  우리집은 입주한지 삼년 된 신축 아파트였다. 나는 신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샀고 말로만 듣던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삼일 동안 세 살, 여섯 살 아이를 시댁에 맡겨두고 남편과 사전점검을 할 때 새 가구 냄새때문에 숨이 막혔지만 그마저도 기쁨이었다. 집앞의 놀이터에 우리 아이가 뛰어놀 상상을 하며 남편과 흐뭇해했고 집안 곳곳 새 것의 느낌은 나를 설레게했다.

  집을 일찍 팔아서 할 수 없이 입주 초기에 한 두 집 불켜져 있을 때 입주를 했다. 페허같은 새 아파트 단지였다고 할까? 엘리베이터에는 나무판이 붙여져 있었고 지하주차장에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자재들이 쌓여있었다. 새로 식재한 나무들은 너무 어리고 야위어 비실거렸다. 모든 것이 서툴고 불편했지만 신축 아파트에 이사한 것만으로 나는 뿌듯했고 좋았다. 그마저도 새로움이었다.


  그랬던 우리집인데 삼 년이 지난 뒤 가격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팔리지도 않았다. 한 두 달 전에 값을 낮춰서 매한 집이 부러울 정도였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다들 떨어지고 있잖어. 우리집만 그런 것도 아니고. 곧 회복되겠지.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다. 집은 팔리지도 않았고 그 중에 하나씩 매매된 집들도 가격이 점점 낮아졌다.

  우리집은 떨어지고 있지만 학원가들이 몰려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단지는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나는 살아볼거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한 학군지였다. 뉴스를 통해 기사를 접하고 많이 속상했다. 저녁밥상의 음식들이 입안을 겉도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내가 결혼하고 오천만원의 종잣돈을 불려 빚을 내고 다시 모으고 하는 수없는 과정을 반복하여 마련한 집인데 그 집값의 원금 조차도 건질 수 없는 현실이 참담했다. 반대로 다른 이들은 같은 돈으로 집을 샀지만 그 집들이 오르고 있다니.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남편을 졸랐다. 우리 사지는 못해도 구경이나 가보자. 아침부터 부동산 몇군데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여섯 살, 아홉 살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집 구경을 갔다. 속으로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돈도 없는데 돈 없는 티는 내지 못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집구경을 하는 현실이 우울했다.

  구경을 하고 온 날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계속 그 집들이 눈에 아른거렸고 계속 인터넷 부동산을 뒤지며 그나마 저렴한 집들을 검색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내가 가고자 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낮은 가격의 아파트를 샀다. 이사할 생각이 없어서 새로 산 집은 전세를 돌리겠다고 했다. 중개인은 근처에 여고가 있어서 보통 2월에 전세 문의가 많다고 했기에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잔금을 치르기로 한 2월이 되어도 전세 문의는 있었으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도 뭔가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직장에서 내가 마지막 단추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마지막 단추라는 것은 남들 다 맞추고 마지막에 나를 아무데나 끼워넣는 것이었다. 다들 나를 물로 보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거 신경 안 써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 참담한 마저 들었던 때였다. 나는 그 기분을 떨치기 위해 말도 안되게 이사를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그 즈음 딸의 아랫니 교정까지 했고 하필 이사한 날은 엊그제 교정한 딸의 얼굴에 멍이 들고 이가 아파 하루종일 고통스러워하는 날이었다. 이사를 하느라 아들과 딸을 시댁에 맡겼는데 딸은 시댁에서 엄마도 없이 잇몸이 부어오른 채 치통까지 견뎠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군지라는 곳에 이사를 왔다. 이전 집도 팔지 못하고 이사온 집의 빚도 고스란히 안은 채. 남편과 나는 생각지도 않은 빚을 지고 이사를 왔고 이사온 첫 날부터 빚걱정에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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