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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Oct 05. 2024

치즈가 돌아왔다

-나비에게 쫓겨난 치즈가 다시 오다.

  길고양이 나비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고 영역을 지키기 위해 치즈를 우리집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계속 쫓아내었다. 게다가 야외 베란다에서 지키기까지 했고 도망가는 치즈를 뒤쫓아가기도 했다.

  내가 몇 년동안 보아온 길고양이들은 다들 사이가 좋았다. 다른 고양이가 밥을 먹고 있으면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려주며 의리도 지켰다. 그런데 나비는 도대체 치즈와 어떤 사연이 있길래 그렇게 치즈를 못 오게 하는걸까? 분명히 치즈는 나비를 따라 우리집에 왔었는데.


  

  다행히 앞베란다 문지기를 열심히 하던 나비는 어느 날부터 경계가 느슨해졌다. 계속 지키는 시간도 좀 줄어든 것 같았다. 그 틈에 치즈가 찾아왔다. 나비에게 쫓겨 도망갈 때 치즈의 배는 불러 있었다.(치즈는 번째 임신을 했었다.) 하지만 사이 치즈는 배가 홀쭉해서 돌아왔다. 어딘가에 새끼를 잠시 두고 급히  먹이를 먹으러 온 것 같았다. 치즈의 아기들이 궁금해졌다.



  치즈는 나비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나는 방충망 너머로 치즈를 보자마자 반가워 베란다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나비가 오기전에 치즈가 얼른 밥 먹고 가도록 하기 위해 밥그릇에 사료를 그득 담아주고 츄르 하나도 얹어주었다.

  치즈는 예전의 그 음성 그대로 아주 낮게 '야옹' 하고 울어주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치즈는 내가 방충망을 열 때는 뒤로 물러나 있었다. 치즈와 나는 다가가지 못하는 선이 분명히 존재했고 나는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치즈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한 며칠동안 치즈는 나비의 눈을 피해 아침마다 밥을 먹으러 왔다. 그 때마다 나도 치즈 마음이 되어 나비가 올까봐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혹시 치즈가 밥을 먹고 있는데 나비가 오기라도 하면 나는 방충망을 열고 나갔다. 그러곤 치즈가 도망갈 수 있도록 나비가 오지 못하게 나비쪽을 계속 응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아침 이른시간에 잠시일 뿐, 계속 베란다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기에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어쩌다가 동물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까지 하게 되었는지. 한심하다가도 자꾸만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부터 아침이 밝아오면 치즈 걱정에 베란다 문부터 열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주변 풍경들을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다.


  나무잎 사이로 떠오르는 이른 햇살과 차가운 공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고양이들의 낮은 울음소리, 고요한 길의 풍경을 마주했다.
길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놓쳤을 것들을
좀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삶의 의미는 자연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냥 쉽게 지나쳤던 것들의 가치를
깊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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