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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502년/1571년 1월 3일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 태어난 날에 세상을 뜨다

by 나그네

이황의 학문은 일대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를 통해 영남을 배경으로 한 주리적(主理的)인 퇴계학파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도쿠가와(德川家康) 이래로 일본 유학의 기몬학파(崎門學派) 및 구마모토학파(熊本學派)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또한, 개화기 중국의 정신적 지도자에게서도 크게 존숭을 받아,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3국의 도의철학(道義哲學)의 건설자이며 실천자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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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록』에 의하면, 조목(趙穆)이 이덕홍(李德弘)에게 “퇴계선생에게는 성현이라 할 만 한 풍모가 있다.”고 했을 때, 이덕홍은 “풍모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행통술(言行通述)』에서 정자중(鄭子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생은 우리나라에 성현의 도가 두절된 뒤에 탄생해, 스승 없이 초연히 도학을 회득(會得)하였다. 그 순수한 자질, 정치(精緻)한 견해, 홍의(弘毅)한 마음, 고명한 학(學)은 성현의 도를 일신에 계승했고, 그 언설(言說)은 백대(百代)의 후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공적은 선성(先聖)에게 빛을 던져 선성의 학(學)을 후학의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이러한 분은 우리 동방의 나라에서 오직 한 분뿐이다.”


이익은 『이자수어(李子粹語)』를 찬술해 그에게 성인(聖人)의 칭호를 붙였고, 정약용(丁若鏞)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을 써서 그에 대한 흠모의 정을 술회하였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제자들에게서 성현의 예우를 받는, 한국 유림에서 찬연히 빛나는 제일인자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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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몬학파의 창시자 야마사키(山崎暗齋)는 그를 “주자의 직제자(直弟子)와 다름없다.”며 ‘조선의 일인(一人)’이라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제(高弟) 사토(佐藤直方)는 “그의 학식이 이룬 바는 크게 월등해 원명 제유(元明諸儒)의 유(類)가 아니다.”라고 찬양하였다. 이나바(稻葉默齋)는 ‘주자의 도통(道統)’에서 ‘주자 이래의 일인(一人)’이라고 존신(尊信)했으며, 구마모토학파의 시조 오쓰카(大塚退野)는 “만약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주자의 미의(微意)는 불명해 속학(俗學)이 되어 버렸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하였다.


도쿠가와 말기의 요코이(橫井小楠)는 그를 원·명시대를 통해 ‘고금절무(古今絶無)의 진유(眞儒)’라 절찬했고, 역시 이 계통에 속하는 막부(幕府) 말 메이지(明治)시대의 구스모토(楠本碩水)는 “명대의 대유(大儒) 설경헌(薛敬軒)·호경재(胡敬齋)와 명말청초의 육가서(陸稼書)·장양원(張楊園)과 비교하면 훨씬 탁월하다.”고 단언하였다. 마쓰다(松田甲)의 『일선사화(日鮮史話)』에 의하면, 요코이의 친구이자 제자로서 메이지 제일의 공신이며 교육칙어(敎育勅語)의 기초자인 모토다(元田東野)는 “정주(程朱)의 학은 조선의 이퇴계(李退溪)에게 전해졌고, 타이야(退野) 선생이 그 소찬(所撰)의 『주자서절요』를 읽고 초연히 얻은 바 있었으니, 내 지금 타이야의 학을 전해 이것을 금상황제(今上皇帝)에게 봉헌하였다”고 술회했다 한다.

1926년 중국의 북경(北京)상덕여자대학(尙德女子大學)에서는 대학의 증축·확장기금에 충당하기 위해 『성학십도』를 목판으로 복각(復刻)해 병풍을 만들어서 널리 반포(頒布)하였다. 이때,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찬시(贊詩)를 써 그 제1연에서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며 거리낌 없이 그를 성인이라 호칭하였다.


다음과 같은 조호익의 말은 이황의 학적 지위를 간결하게 표현한 매우 적절한 평가라 볼 수 있다. “주자가 작고한 뒤 …… 도(道)의 정맥은 이미 중국에서 두절되어 버렸다. 퇴계는 …… 한결같이 성인의 학으로 나아가 순수하고 올바르게 주자의 도를 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만한 인물을 볼 수 없다. 실로 주자 이후의 제일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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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음력으로 하면 날짜가 다르나, 양력으로 환산하면 같은 날에 세상을 뜨니 1502년 1월 3일 출생하여, 1571년 1월 3일 사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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