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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Jul 19.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1947년 7월 19일

좌우합작의 중심 몽양 여운형 백주에 암살당하다

독립운동가이자 저술가, 언론인이었던 몽양 여운형은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미군정에 의해 거부당하여 해체되고 만다. 

이후 모스크바3상회의에 의해 정부수립이 논의되지만 좌파와 우파의 갈등으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몽양 여운형은 이에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며 좌익, 우익을 두루 망라하는 거대 결집세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IOC 가입축하기념으로 서울 운동장에서 한국과 영국의 친선축구경기가 열렸는데 당시 체육부장관이던 여운형은 경기 참관 후 민정장관 수락을 위해 '옷을 갈아입겠다'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서울 혜화동 로터리 근방에서 트럭 1대가 갑자기 들이닥쳐 여운형이 탄 자동차를 가로막았다. 이어 한지근(韓智根)이 나타나 여운형이 탄 자동차로 달려가 2발의 총탄을 쏘았다. 2발은 여운형의 복부와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고, 병원으로 호송 중에 그는 절명하였다. 

암살 배후에는 우익 계열이라는 설과 박헌영 계열이라는 설 그리고 김일성 계열에 의한 암살이라는 설만 떠돌뿐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낮 1시 혜화동 로터리 백주대낮에 몽양 여운형이 암살을 당한 날이 1947년 7월 1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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