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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022. 중기 바로크 9 – 독일

by 나그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독일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해 음악적으로 뒤처진 지역이었다. 이는 문화적 후진성이 아니라,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정치 구조와 안정된 궁정 후원 체계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를 중심으로 한 예배음악 전통이 발전하면서 독일 음악은 점차 독자적인 방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 하인리히 쉬츠 — 독일 바로크의 개척자

독일 바로크 음악의 출발점에는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ütz, 1585–1672)가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조반니 가브리엘리와 몬테베르디에게 수학하며 이탈리아의 콘체르타토(concertato) 양식과 표현적 단선율 개념을 배워왔다.


쉬츠는 이를 독일어 가사와 루터교 예배 전통에 결합시켜, 모테트·종교 협주곡·수난곡 등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음악은 후대 독일 작곡가들이 이탈리아 양식의 수용을 통해 독일적 신앙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마련했다.


2. 무파트와 피셔 — 외래 양식의 본격적 수용


17세기 후반, 게오르크 무파트(George Muffat)와 요한 카스파르 페르디난트 피셔(Johann Caspar Ferdinand Fischer)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음악 양식을 본격적으로 독일에 도입하였다.


무파트는 로마의 코렐리(Arcangelo Corelli) 밑에서 배운 이탈리아식 대위법과 명료한 리듬 구조를 바탕으로 트리오 소나타와 콘체르타토 양식을 정립하였다.


피셔는 프랑스 궁정음악의 우아한 댄스 리듬과 정제된 장식법을 건반 모음곡에 적용하여 ‘프로베르거(Froberger)가 확립한 건반 모음곡 형식’을 한층 다채롭게 발전시켰다. 그는 《Ariadne musica》(1702)를 통해 20개의 조성을 순환시키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는 평균율 조율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적 시도로 평가된다.


이 시기에는 또한 요한 하인리히 슈멜처, 요한 로젠뮐러, 하인리히 이그나츠 폰 비버 등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등장하여 독일적 기교와 정서가 결합된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전시켰다.


3. 오르간 음악의 황금기 — 북스테후데와 파헬벨

파헬벨은 몰라도 캐논 락버전 이 영상은 많이 보셨을 듯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양식이 주로 세속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면, 독일이 가장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분야는 오르간 음악이었다. 요한 아담 라인켄, 게오르크 뵘, 빈센트 뤼벡,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하우, 요한 파헬벨, 그리고 무엇보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가 이 시기의 중심 인물로 꼽힌다.


이들은 토카타, 프렐류드, 푸가 같은 형식을 통해 연주자의 즉흥성과 악기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대위적 푸가 기법을 흡수하여 독일식 엄격함과 결합시켰다.


또한 루터교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코랄 선율을 기초로 한 전주곡, 환상곡, 파르티타 등의 형식을 발전시켜 ‘음악을 통한 신앙의 명상’이라는 새로운 예배음악의 전통을 확립했다.


특히 북스테후데의 Abendmusiken(저녁음악회) 전통은 교회 밖에서도 공개적으로 종교음악을 연주하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었으며, 젊은 바흐가 훗날 직접 그를 찾아 리뷔크까지 걸어갔을 만큼 영향력 있는 오르가니스트였다.


4. 건반 음악의 발전 — 쿠나우와 독일 소나타의 태동

쳄발로(하프시코드) 음악에서도 피셔와 함께 요한 쿠나우(Johann Kuhnau)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쿠나우는 각 모음곡의 서두에 전주곡을 붙여 구성의 통일성을 높였고, 음악으로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성서 소나타(Biblische Sonaten)’를 작곡하였다.


이는 표현적 건반음악의 초기 형태로, 후대 바흐의 건반 작품에 직접적인 선례가 되었다. 쿠나우는 또한 최초로 “쳄발로 소나타”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기악 음악의 자율성을 주장했는데, 이 점에서 그는 바흐 이전 독일 건반음악의 완성자로 평가된다.


5. 루터교 칸타타의 형성

이 시기 독일 음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은 루터교 칸타타였다. 칸타타는 등장하자마자 모테트와 종교 협주곡을 대신하여 루터교 예배의 중심 장르로 자리 잡았다.


초기 칸타타는 성경 구절, 중세 코랄, 혹은 독일 시의 텍스트를 엮어 만든 ‘코랄 칸타타’ 형태를 띠었으며, 이탈리아의 소나타 양식과 콘체르타토 양식이 결합되었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형식이 아니라 루터교 신앙을 ‘음악으로 설교’하는 신학적 기능을 지닌 예배음악이었다.


이렇듯 바흐 이전의 독일 음악은 이탈리아의 화려한 기악 양식과 프랑스의 세련된 댄스 리듬, 그리고 루터교적 신앙 전통이 결합되어 형성된 복합적 문화였다. 쉬츠의 신학적 감수성, 무파트와 피셔의 양식적 융합,

북스테후데와 파헬벨의 오르간 전통, 쿠나우의 건반 실험과 칸타타 형식의 발전은 모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사의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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