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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넘어지면 아프잖아요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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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관장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목장갑을 낀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재개발 현장 특유의 흙먼지와 시끄러운 굉음이 그를 감쌌다. 부업 관련 투자 건으로 잠시 들른 이곳에서, 그의 시선은 4층 높이 건물 뼈대 위를 바쁘게 움직이는 한 여성에게 고정되었다.


“야, 저기… 저 여자 알바생은 매번 저렇게 위험한 데서 일해?”


정 관장은 옆에 있던 현장 관리자에게 물었다. 관리자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피식 웃었다.


"아, 한가람이요? 쟤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갑니다. 남자들보다 힘이야 당연히 없죠. 근데 기가 막히게 날쌔요. 저 좁고 복잡한 철골 구조물 위를 고양이처럼 다녀요. 시멘트 포대 옮기는 것보다 저런 데서 자재 정리하는 게 일당이 더 세거든. 제가 그래서 꼭 씁니다.“


'고양이처럼 날쌔다.' 정 관장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수십 년간 수많은 격투 천재를 봐왔지만, 저런 비정상적인 민첩성은 처음이었다. 위험한 환경이 그녀에게 힘이 아닌 균형과 반사신경을 요구하고 있었고, 한가람은 그 요구에 완벽히 부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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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4층 높이, 폭 20cm 정도의 좁은 철골 위를 걷던 한가람의 발이 미끄러졌다. 잠시 중심을 잃은 그녀의 몸이 기울어몸이 허공에 팽개쳐졌다.


콰앙!


주변의 소음이 정 관장의 귀에서 사라졌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적어도 10미터는 족히 되는 높이였다. 저 정도면 최소 중상, 아니면…


하지만 그 다음 순간, 한가람은 추락하는 대신 기적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추락하는 속도를 그녀의 몸이 찰나에 멈춰 세운 듯, 허공에서 몸을 순식간에 비틀어 균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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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은 전혀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한가람은 다음 딛을 곳을 계산했다. 그녀는 몇 번의 튕기듯 정교한 반동과 좁은 철골 틈 사이를 밟고, 마치 중력을 거부하는 듯, 그녀의 몸은 공중에서 추락을 멈추고 고양이처럼 가볍고 안전하게 지면에 내려섰다. 정 관장은 충격으로 굳었던 몸을 간신히 움직여 한가람에게 달려갔다.


한가람은 땀을 닦으며 흙이 묻은 낡은 티셔츠를 털고 있었다. 한가람은 땀을 닦으며 흙 묻은 낡은 티셔츠를 툭툭 털어냈다. 마치 방금 횡단보도를 건너온 사람처럼, 그녀의 표정에는 무심함과 태연함만이 감돌았다.


"너… 방금 그 움직임, 네가 일부러 계산해서 한 거냐?"


정 관장이 헐떡이며 물었다. 한가람은 피곤한 듯 정 관장을 올려다보았다.


"계산요? 아니요."


그녀는 철골에 쓸린 팔을 대충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냥… 넘어지면 아프잖아요. 최대한 안 다치려고 그렇게 된 거예요."


'넘어지면 아프기 싫어서 발현된 생존 본능.'


그 짧은 대답과 함께, 정 관장의 머릿속이 텅 비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격투의 모든 논리가 저 소녀의 단 한순간의 본능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정 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명함과 함께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한가람.“


한가람은 땀을 닦던 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당신?"


무심하던 그녀의 표정에 경계심이 스쳤다. 정 관장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나랑 체육관 가자.“


한가람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네? 저 운동 싫어하는데요. 돈도 없고.“

"돈?"


정 관장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지금 네가 받는 일당의 세 배를 보장해주지. 불법적인 일 없이, 네가 가장 싫어하는 '넘어지는 일' 없이 돈을 버는 거야.“


정 관장은 몸을 숙여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물론 훈련? 네가 원하는 만큼만 해. 네가 넘어지는 것보다 훨씬 덜 아플 거고.“


한가람의 눈빛이 그제야 미세하게 변했다. '일당 세 배.' 그리고 '넘어질 걱정 없는 일.' 힘들게 땀 흘려 고생할 필요 없이, 몸은 편안하고 지갑은 두둑해지는 이 거래는, 그녀에게 지극히 이성적이고 완벽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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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은 흙 묻은 손을 내밀어 정 관장의 명함을 낚아챘다.


"좋아요. 그럼... 밥값은 버네요.“


흙먼지가 이는 건설 현장, 그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투의 세계로 향하는 한가람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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