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일제에서 해방되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연합군 측에 유리하게 되어, 그해 11월 말에 미국·영국·중화민국 3국은 소위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945년 5월에 나치 독일이 항복하였고, 8월 8일에는 미국과 영국, 소비에트 연방이 모여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1945년 8월 15일 아침, 건국동맹의 위원장 여운형은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와 협상을 하여 하기 5개 조항에 대한 요구를 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정치범, 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서울의 3개월분 식량을 확보할 것.
치안 유지와 건국 운동을 위한 정치 운동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학생과 청년을 조직, 훈련하는 데 대하여 간섭하지 말 것.
노동자와 농민을 건국 사업에 동원하는 데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무조건 일본으로 도망가야 했던 류사쿠는 이를 수용하고, 일본으로 안전한 도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정오에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그러나, 잡음이 심한 편인데다가 일본어가 아닌 황족어로 방송되었기에 조신인이 알아들을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항복선언을 하던 그 시간에도 소련과 일본은 청진시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등 전 국민이 해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여운형 합의안에 따라서 형무소의 정치범, 경제범이 석방되자 그제서야 해방을 인식하였다. 일반적인 광복절 사진이라고 나온 부분들은 대부분이 08.16의 사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