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를 읽고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지만, 그 누구도 완벽한 답을 만들 수 없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많은 이들이 분명 마음은 감각으로 관찰할 수 없는데도 이를 실재한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소설 속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 아름답고 서정적이게 다룬 경우도 많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는 분명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선과 악의 공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는 1886년에 발매되어 지금까지 이중인격이라는 소재를 소설에 넣은 작품들의 원조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본 작품을 떠올릴 때에는 이중인격이 가장 크게 떠오르지만, 사실 그 참신한 소재로 어떤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는 선과 악의 공존이다. 사실 악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시기는 철학사적으로 작품 발매의 100년 전부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긴 역사 중에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이전부터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부터 근대의 철학자들까지 오랜 시간 동안의 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악의 저자(the author of sin)’ 문제라고 하는데, 모두가 보편적으로 신을 믿었던 근대까지는 모든 인과에 관여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악 또한 신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다. 더 이상 창조는 신만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더 이상 철학적으로 옳게 살아가는 법을 찾는 삶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에서 지킬 박사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철학적으로 크다. 왜냐하면 그 주제가 중요성을 잃어가던 악의 저자 문제를 다시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는 1) 자신 안의 악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했으며, 2) 이에 참회하는 삶을 살기보다 분리해서 양측이 모두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킬 박사가 악의 측면을 분리해서 제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의 방식, 악의 방식이 혼합되어 생기는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각각을 분리해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즐겁게 살고자 하였다. 즉 지킬 박사의 행위는 악의 존재와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분리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 지킬 박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악인 하이드 씨가 아니다. 하이드 씨가 힘을 키워나가서 지킬이 죽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만 본 작품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지킬은 앞서 말했듯이 악을 완전히 선에서 제거하기보다,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따로 살기를 원했다. 악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그보다 지킬박사를 죽음으로 이끈 근본적 원인은 악 그 자체가 아니라 선과 악을 분리하고자 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을 분리하는 것은 왜 잘못되었는가? 필자는 저자가 이 점을 직업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래니언과 지킬은 의사이다. 하지만 래니언과 달리 지킬은 화학자이기도 하다.
즉 전통적인 가치관인 래니언과 이를 과학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 지킬의 구도로 보면, 본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대립 구도로도 볼 수 있다. 즉 신학과 감성의 영역인 따뜻한 시대에서 공업화와 기계의 차가운 시대로 변하는 상황을 같은 직업을 가진 래니언과 지킬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선과 악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나쁘기보다, 감성과 신이라는 본성을 잊고 ‘미쳐가는’ 사회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상 당연한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이다. 어쩌면 당시 과학의 발전으로 근대화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저자는 '암울하고 어두운' 것으로 보았기에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담아낸 것이 아닐까?
전통의 신학 VS 새로운 과학
즉 필자는 본 작품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 이외에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산업화로 신과 선에 대한 지식을 과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공업화 시대의 분위기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저자의 인식이 ‘선과 악을 분리하는’, 즉 신에게 도전하는 형태로 과학을 묘사해 결국 지킬의 죽음을 통해 과학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하려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본질은 선과 악이 아니라, 선과 악의 분리를 시도한 과학과 신학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별점 : ★★★★★ : 고전임에도 분량이 짧고, 인물들도 적어서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기 굉장히 좋았다!